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았다. 이맘때면 거리는 한 해 중 가장 화려한 불빛으로 성탄을 알린다. 신자와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며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뻐한다. 그러나 성탄의 진정한 의미는 반짝이는 조명이나 형식적 인사에 머물러 있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마땅히 머물 곳조차 없어 마구간 구유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의 모습은 오늘 우리가 성탄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 현실은 어떠한가.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가난과 불안·고립 속에서 하루를 버텨야 하는 이들이 많다. 경제적 어려움에 내몰린 이들, 이주노동자와 그 가족, 질병과 외로움에 놓인 노인과 장애인, 경쟁과 혐오의 구조 속에 상처 입은 청년들이 바로 우리 곁에 있다. 구세주 탄생의 기쁜 소식은 사회의 권력자들이 아니라 들판에서 밤을 지새우던 목동들에게 가장 먼저 전해졌다. 성탄의 은총은 작고 보잘것없어 보이는 자리에서 퍼져나갔다. 그렇기에 성탄은 축제인 동시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향해 시선을 돌리라는 하느님의 요청이다.
전국 각 교구장 주교들도 성탄 담화에서 이 점을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주교들은 성탄의 기쁨이 말에 그치지 않도록, 가진 것을 내려놓고 시간을 내어 이웃에게 머무는 실천을 요청했다. 혐오와 분열이 아닌 연대와 책임의 선택, 무관심 대신 다가섬의 용기가 성탄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태도임을 일깨웠다.
성탄의 빛은 말로 선포될 때보다 삶으로 증언될 때 더욱 밝게 빛난다. 성탄의 기쁨은 어렵고 소외된 이웃과 함께할 때 공동체를 새롭게 하는 힘이 된다. 가장 낮은 자리로 오신 그분의 길을 따를 때, 성탄은 우리 사회에 희망을 전하는 사건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