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왜곡 넘치는 미디어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의 덕목은 ‘자기 비움’
세상이 외면해도 지치지 않고
맡겨진 복음 선포의 소명 다해야
17일은 ‘주님 승천 대축일’이자 ‘홍보 주일’이다. 예수님의 승천은 교회를 향한 새로운 시작, 곧 복음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파견으로 이어진다. 가톨릭교회는 현대사회에서 대중매체를 통한 복음 선포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1967년 ‘홍보 주일’을 제정했다.
역사적으로 대표적인 미디어 사도는 수많은 설교과 저술 등으로 복음을 전파한 바오로 사도일 것이다.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에 의해 각각 1914년과 1915년 이탈리아에서 창설된 성바오로수도회와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소명이 ‘사회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통한 복음 선포’인 이유다. 이에 바오로인들은 전통적인 수도생활과는 다소 다른 출판·신문·영화·라디오·텔레비전 등을 이용해 복음을 전해왔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제1 수호성인 역시 바오로 사도다. 홍보 주일을 맞아 성바오로딸수도회 한국관구장 김화순(트리포니아) 수녀를 만났다.
김화순 수녀는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 유산을 담은 「길 진리 생명 기도」를 펴냈다.
“cpb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의 창립 38주년을 축하드립니다. 같은 수호 성인을 모시고 있으니 한 가족같이 느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당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직접 만난 적이 없었고 열두 사도에도 속하지 못했지만, 세속적으로는 내세울 것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에 대한 체험은 그분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입니다’(갈라 2,20)라고 고백할 정도로 그리스도화를 이룬 분으로, 바오로 사도의 삶과 복음 선포 사이에는 괴리가 없었습니다. 주님 때문에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어떤 상황에서도 하느님 말씀은 갇혀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셨습니다. 저희 바오로딸들은 미디어를 통해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고 있는데, 첫 번째 미디어는 저희 자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 곧 그리스도였던 바오로 사도는 저희 삶의 이정표이고, 그분이 걸었던 회심의 여정과 사명을 위한 열정은 저희 삶의 토대가 됩니다.”
최근 알베리오네 신부의 영적 유산을 담은 「길 진리 생명 기도」를 펴내셨습니다.
집필 의도와 ‘길 진리 생명 기도’란 무엇인가요?
기도의 핵심은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입니다. 그리스도화를 지향하는 이 기도는 교회의 모든 지체를 위한 선물이라 생각했습니다. 특히 기도를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 많은 이와 나누고 싶어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길 진리 생명 기도’는 통합적인 기도로, 예수님의 생각(지성)·감정(마음)·행동(의지)에 집중하면서 그분의 전인격에 동화되도록 동반합니다. 물론 이 여정을 이끄는 분은 성령이시고 평생에 걸쳐 이뤄지는 과정일 것입니다.
책에 ‘주님이 바라시는 대로 할 수 있도록 그분께 나의 지성·의지·마음을 드려야 한다’고 했는데,
자의식이 강하고 주체적으로 행동하도록 교육받은 현대인에게 신앙은 때로 무척 수동적으로 생각됩니다.
권력이든 재물이든 명예든 자기 자신이든 저마다 추구하는 무엇인가를 믿습니다. 곧 하느님 자리에 다른 것을 놓을 수 있습니다. 그 믿음 안에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가늠하며 그 믿음이 주는 가치를 좇으며 살아갑니다. 이런 까닭에 많은 현대인이 진정 자신이 누군지 모르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그것이 현대사회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드러나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자의식은 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존재의 근원이신 하느님 없이 하느님과 분리된 자신을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그리스도인의 정체성, 그 자의식에서 시작된 주체성과 행동방식은 수동적일 수 없습니다. 하느님을 생각하지 않는 세상 논리를 역행하며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앙은 더욱더 능동적인 의지를 발동시키고 복음적 삶의 방식을 선택하도록 이끕니다. 이는 내 힘이 아니라 주님 은총이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사랑받는 자녀라는 자의식이 강할수록 자신의 지성·의지·마음을 주님 뜻에 맞갖게 할 수 있으며, 이는 자기 존재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도록 할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 가장 충만한 삶을 살도록 합니다. 하느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인간상을 계시해주셨기 때문입니다.
현대 매체를 통한 문화 복음화에 평생을 바친 성바오로수도회의 창립자인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OSV
현대인의 삶과 가장 맞닿아 있는 사도직으로 여겨집니다.
수도자로서 중심을 지키면서도 사회와 소통하는 데 있어 고려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저희 사도직은 우리가 이 순간에도 영향을 받고 있는 커뮤니케이션 환경 안에서 이뤄집니다. 그래서 가장 힘든 점은 저희가 추구하는 가치나 방식이 세상의 것과 충돌될 때입니다. 예수님께서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 드려라’(마태 22,21)라고 하신 것처럼 어려운 순간을 맞을 때 우리가 어디에 부르심 받았는지를 의식하며,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을 다시 정립하는 식별의 순간으로 삼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복음과 우리가 받은 신앙을 증거하고 선포하는 기회로 만들고자 합니다.
미디어 환경과 역할 역시 시대와 함께 바뀌어 왔습니다. 지금처럼 범람하고, 누구나 생산 가능하며, 거짓·왜곡 정보가 많은 시대에 ‘미디어 사도’로서 기본 덕목은 어떤 걸까요?
케노시스, 곧 ‘자기 비움’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는 파견된 사람입니다. 파견하신 분의 뜻을 수행해야 하는데, 자기 자신으로 가득 차 있다면 파견된 자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할 것입니다. 오늘날 미디어 환경에서 일어나는 거짓과 왜곡된 많은 것 뒤에는 숨겨진 탐욕이 자리합니다. 이런 환경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자기 비움을 살아간다면, 그 자리는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무대가 될 수 있기에 그 선포는 큰 울림이 되고 그 메시지는 세상을 파고드는 빛이 될 것입니다.
커뮤니케이션 수단이 너무 많아 매체 역할은 축소되고, 노력에 비해 그 효과도 미미할 때가 많습니다.
외면받지 않기 위해 빠르고 자극적이고, 대중이 좋아할 만한 주제와 아이템에 치중하게 되는 면도 있는데,
시대를 반영하면서도 잃지 않아야 할 소명은 무엇일까요?
맞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무시하면서, 그것과 완전히 결을 달리하면서 일방통행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에 대한 존중 없이 일방적으로 우리 식으로 무언가를 줄 때 더 이상 사람들은 그러한 방식도, 메시지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잃지 않아야 할 소명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복음이며 복음의 가치입니다. 이는 길 진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내어주는 것이기에 시대가 변한다 해도, 사람들의 요구가 달라진다 해도 우리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소명입니다.
사회 커뮤니케이션에 종사하는 그리스도인이 추구해야 할 가치에 대해 조언 부탁합니다.
세상이 환호하지 않더라도, 실패를 거듭하고 넘어지더라도, 이해받지 못하고 외면당하더라도 지치지 않고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해 우리에게 맡겨주신 복음 선포의 소명을 다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미디어 사도들은 하느님 말씀 곧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 죽은 이를 살리고 병든 이를 치유하고 어둠 속에 있는 이들에게 빛이 된 참된 생명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러기에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구체적인 삶 속에서 만나고 살아야 하며, 그렇게 체험하고 살아낸 그리스도를 전해야 할 것입니다. 곧 우리가 전하는 그 복음이 먼저 우리들의 사고방식과 생활방식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사도가 만든 매체는 분명 사회의 여느 매체와는 다를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