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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한국교회 실상 담은 문서 공개

충청도 관찰사 박종악이 정조에게 보낸 서한 105통
내포 지역 천주교 교세·신자 구성·탄압 양상 등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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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천주교가 전래된 초기 천주교의 실상을 보여주는 문서가 공개됐다. 조선 정조 통치시기 충청도관찰사를 지낸 박종악(1735~1795)이 1791년부터 사망 직전까지 정조에게 보낸 편지 105통의 필사본에는 충청도 내포 지역을 중심으로 한 천주교의 교세 확장과 신자 구성, 조정의 천주교 탄압 양상 등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박종악의 편지는 ‘수기’(隨記)라는 문서첩에 수록돼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 소장돼 있었으며 장유승 단국대 동양학연구소 연구원이 발굴해 공개했다. 정조가 신하들에게 1200여 통의 편지를 보내 ‘서찰정치’를 전개했던 사실은 2009년 밝혀진 바 있지만 신하가 정조에게 보낸 비밀 답신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인데다 천주교 관련 내용이 상당량 포함돼 있어 주목된다.

박종악은 1791년 당시 “내포 강문리, 우평리, 홍주 신평리 등 온 마을이 거의 다 천주교에 물들었습니다. 예산 두촌면 호동리의 경우 100호 가운데 물들지 않은 곳이 20호에 불과합니다”라고 정조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승훈(베드로)이 한국인 최초로 1784년 세례를 받은 점을 생각하면 한국에 천주교가 얼마나 빠른 속도로 확산됐는지 짐작이 가능하다.

박종악의 편지 내용 중에는 오는 8월 복자품에 오르는 순교자 124위 중 한 명으로 그동안 양반으로 알려져 왔던 인언민(마르티노)의 신분을 ‘상한’(常漢, 양민 또는 천민)으로 기록한 부분도 있으며 ‘내포의 사도’ 이존창(루도비코)도 사노비라고 밝힌 기록이 있어 관심을 끈다.

조광 교수(한국교회사연구소 고문)는 “박종악의 ‘수기’는 1791년 신해박해 후의 내포지역 천주교 상황에 대한 생생한 현장보고서라는 데 중요성이 인정된다”며 “복자품에 오르는 124위의 역사를 밝히는 보완자료로 앞으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고 평했다.

한국교회사연구소(소장 김성태 신부)는 박종악의 편지가 교회사 사료로서 높은 가치가 있다고 판단, 12일 오후 3시 서울 저동 연구소 회의실에서 ‘1791년 내포: 박종악과 천주교 박해’라는 주제로 연구발표회를 연다. 발표는 장유승 연구원이 맡는다.

※문의 02-756-1691 한국교회사연구소

 
 
▲ 박종악이 정조에게 보낸 편지를 모은 문서첩 ‘수기’의 표지(왼쪽)와 내용의 한 부분.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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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4-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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