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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광희문성지 담당으로 임명된 한정관 신부

순교의 피땀 어린 광희문 널리 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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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희문 순교성지 앞에서 순교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한정관 신부. 이힘 기자

8월 22일 서울대교구 사제인사를 통해 광희문성지 담당으로 임명된 한정관 신부는 “광희문 앞에만 오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말했다.

8월 29일 광희문에서 만난 한 신부에게서 70세 원로사제가 아니라 젊은이의 기운이 느껴졌다. 그는 “170여 년 전 순교자들이 흘린 피와 땀으로 문과 성곽 일대가 붉게 물들었을 것을 상상하면, 유구한 세월과 함께 순교자들의 크나큰 신앙이 느껴져 20대 청년처럼 가슴이 뛴다”고 했다. 한 신부는 “광희문이 한국 천주교 순교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장소임을 모르는 이가 많다”고 아쉬워했다.

조선 세조 때인 1456년께 세워진 광희문은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에 있는 성문으로 또 다른 이름은 ‘남소문’이다. 광희문은 서울 서소문과 함께 도성 안에서 사망한 사람들의 시신을 성밖으로 운반해 나가는 ‘시구문’(屍軀門)이었다. 이 문을 통해 최양업 신부 부친 최경환(프란치스코)과 우술임(수산나)ㆍ김임이(데레사)ㆍ이간난(아가타)ㆍ정철염(가타리나) 성녀 등 다섯 명의 성인과 송베네딕토와 아들 송베드로, 며느리 이안나 등 세 명의 복자 시신이 광희문 밖으로 버려졌다.

한 신부는 “서소문 순교성지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남소문(광희문) 역시 많은 순교자의 주검이 나오고 묻혔던 역사적 순교지”라며 “1839~1868년 적지 않은 순교자 시신이 문 앞에 버려지거나 성벽 어느 곳에 묻혔다는 기록이 이곳이 성지임을 증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광희문’이라는 이름에서도 주님 섭리를 느낀다고 했다. “빛 광(光)자에 빛날 희(熙)자예요. 세속에서는 죽어서 나갔지만, 하느님 곁에서 빛나는 이들이 바로 순교자들 아니겠습니까. 빛이 나려면 자신을 남김없이 태워야 하는데, 불꽃 같은 순교자들 삶이 문 이름에 드러나고 있습니다.”

은퇴를 마다하고 광희문 성지 담당을 자원한 한 신부는 1944년 평안남도에서 출생, 1969년 사제품을 받았다. 필리핀 성 토마스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받은 그는 2000년부터 8년간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로, 1983~2008년 가톨릭대 교수로 헌신했다. 또 동두천ㆍ장안동ㆍ반포ㆍ신천동 본당을 거쳐 최근 신당동본당에서 사목활동을 해 왔다.

“은퇴할 나이에 이처럼 의미 있는 장소에서 새 신부처럼 사목할 수 있게 해주신 교구장님께 감사드립니다. 칠순이 돼서야 순교자 영성을 제대로 느끼며 살 수 있게 됐습니다. 8월 초에 광희문 앞에 문을 연 순교현양관에 많은 분이 오셔서 기도하고 쉬었다 가시기를 바랍니다.” 문의 : 02-2234-1456, 광희문성지 순교현양관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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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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