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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인의 눈] 휴가철에 진정한 안식을 / 김민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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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여름 휴가철이다.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는 말처럼 사람들은 즐거워하는데, 신자들이 줄어드는 주일미사를 집전해야 하는 본당 신부들에게는 반갑지 않다. 그래도 어쩌랴. 쉬라고 하시는 예수님 말씀(마르 6,31; 마태 11,28 참조)에 따라 8월 한 달은 성가대도 쉬게 해주고, 헌화회도 전례 꽃꽂이 대신에 화분으로 대체하라 하니 모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마태 5,12 참조) 모습에 덩달아 나도 마음이 기쁘고 즐겁다. 쉼이 모두에게 기쁨과 즐거움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스레 다가온다.

쉼표 없이 연주되는 음악이 없듯이, 삶에도 쉼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삶에서 쉼표를 놓칠 때 몸과 마음이 소진되어 지쳐버린다. 어떤 암환자를 만난 적이 있는데 너무 일만하다가 암에 걸리고 보니 너무 억울하단다. 이제 살 만하니까 이렇게 덜컥 암에 걸려 죽을 날만 기다라는 꼴이 되었다고…. 마찬가지로 쉼이 없는 삶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나 다름없다. 언덕에서 내려오던 트럭이 브레이크 파열로 앞에 있던 승용차를 덮쳐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유명을 달리하는 불행한 사고가 많다. 삶에도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달리다가도 필요할 때에는 브레이크를 밟아 천천히 가기도 하고, 멈추기도 해야 한다.

쉼과 안식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적인 휴식이다. 대나무를 생각해보자. 대나무는 나무 중 둘레가 매우 가는 나무다. 그러나 대나무는 숲속에서 하늘 높이 자란다. 비바람이 불고 폭풍우가 몰아쳐도 쉽게 꺾이지 않는다. 왜일까? 바로 대나무에는 마디가 있기 때문이다. 대나무는 자라면서 마디를 만든다. 마디를 만들 때에는 성장하지 않고 멈춘다. 멈추는 시간에 마디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마디를 만든 대나무는 그것을 바탕으로 위를 향해 자란다. 일정 시간이 지나면 더 높이 성장하기 위해 또 다시 멈춘다. 대나무는 마디들로 인해 아무리 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다. 바쁘더라도 잠시 쉬고 안식의 시간을 가지면서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할 때 하느님의 뜻을 깨닫고 영적으로 더욱 성숙한 신앙인이 될 것이다.

예전에 읽었던 「안식일은 저항이다」라는 책이 기억난다. 구약에서 이집트 파라오 왕의 지배하에 놓였던 이스라엘 백성의 처지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다. 소비를 위해서 끊임없이 생산하고, 끊임없이 노동을 해야 한다. 이웃의 개념이 상실되고 모든 사람들을 자본을 위한 도구로 보는 파라오 왕의 체제는 ‘쉼이 없는 착취 시스템’이다. 이 강자의 시스템에 저항하고 해방시키는 분은 ‘쉬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안식일은 창조주 하느님께 돌아가게 하고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는 계명이다. 그런데 요즘 제4차 산업혁명과 함께 더욱 진화하는 디지털 문화는 한층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파라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예를 들어, 60초 이하의 짧은 동영상 플랫폼 ‘쇼츠’에 대한 사람들의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 한 번 클릭한 뒤 손가락을 아래로 내리기만 하면 알고리즘에 맞춰 다른 영상이 계속 나오다보니 본인도 모르는 사이 중독되는 것이다.

스마트폰을 보느라 늦게 잠을 자는 취침시간 지연행동도 알고 보면 일상 스트레스를 풀고, 부족한 여가 시간 속에서 즉각적인 감정을 해소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다. 분명 디지털 문화는 현대인의 신체 및 정신 건강을 위협하는 새로운 형태의 자기 착취 시스템이라는 부정적인 면이 있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독립되고 일상 속 신앙을 회복하려면 모든 애플리케이션 푸시 알림을 끄고 알고리즘을 멀리하도록 노력하며, 주일에는 스마트폰에서 잠시 떨어지는 ‘디지털 안식’이 필요하다. 쉼이 없음을 떠나 쉼으로 들어가는 것이 절박하고 어려운 이때에 아날로그적인 안식만이 아니라 디지털 안식도 고려해야 진정한 안식을 누릴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김민수 이냐시오 신부
서울 상봉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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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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