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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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의 창] 사랑의 선물과 성역할 / 이동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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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아내가 음식을 너무 잘한다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는 가족을 부양하는 성실한 중년 남성이다. 그는 자녀들을 사랑하고 가족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그는 아내가 친정을 방문하거나 집을 비울 때 자녀들의 식사를 책임져야 할 때면 라면 외에 요리를 할 줄 몰라 상황을 부담스러워했다. 그래서 그는 외식을 하거나 음식을 시켜 먹었다. 나는 그에게 요리를 배우라고 권고했고 대단한 요리를 하라는 것이 아니라 밥, 국 등 간단한 요리를 통해 생존 기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청소를 하지만 요리를 하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는 가족의 생계를 부양하므로 자신이 요리까지 배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팬데믹 전후로 나는 그를 몇 년 동안 만나지 못했다. 다시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최근 아내가 요리를 귀찮아해서 가족들이 주말에 외식을 한다고 했다. 그는 아내의 음식을 최고로 생각했지만 아내가 음식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불편해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요리를 배우거나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팬데믹 이후 음식배달이 증가하고 보편화됐으므로 굳이 요리를 배울 필요가 없을 수는 있다.

여성들의 고등교육과 경제활동 참여율이 증가하지만 여성들은 여전히 밥 짓는 사람들이다. 남성들이 결혼을 하고 싶은 이유가 아내가 차려주는 밥을 먹고 싶다는 환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면 더욱더 그러하다. 그리고 어떤 남성들은 아내들이 요리를 잘하기 때문에 자신이 굳이 요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한동안 남성 셰프들이 예능 프로그램에 등장해서 인기를 끌기도 했다. 남성들이 전문가로서 존경을 받지만 여성들은 집에서 성역할로서 요리를 한다. 여성들은 자신이 밥이 먹기 싫을 때도 밥을 하기 싫을 때도 가족을 위해 요리를 한다. 여성들은 가족을 위한 사랑으로 이런 일을 한다. 하지만 막상 본인이 아플 때 가족들에게 자신이 했던 돌봄을 가족들에게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배달이나 포장 음식의 발달로 죽을 사다 준다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일본의 사회학자이자 여성학자인 우에노 치즈코는 「독신의 오후」(2014, 현실문화)에서 독신 남성들의 노년에 대해 논하고 있다. 노년에 남성들이 독신이 된 이유는 비혼, 이혼, 사별로 다양하다. 그녀는 비혼 남성들은 자신을 돌보고 살림하는 법을 알고 있으므로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혼하거나 아내와 사별한 남성들은 독립적으로 생활하기 어렵기 때문에 이혼, 사별 이후에 불편함과 어려움을 토로하고 재혼을 원한다고 한다. 한국의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은퇴 남성을 대상으로 요리교실을 열고 있다. 남성들은 취미로 생존기술로 요리를 배운다.

선물은 내가 원하면 주고 원하지 않으면 주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선물을 주는 이유는 선물을 받는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역할은 그렇지 않다. 나의 의사와 상관없이 내가 해야 할 의무이고 잘해도 본전, 잘못하면 비난이 돌아온다. 성별 분업의 구도는 남성에게 가족을 위해 돈을 버는 일, 여성에게 가족을 돌보는 일을 성역할로 부과했다. 하지만 여성들은 성역할로 인해 가족을 돌보기 위해 일을 줄이거나 포기해야 했고 경제적 독립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역할은 공평한 분업이 아니다. 맞벌이 부부인 여성들이 집안일이나 돌봄에서 시간이나 에너지를 더 할애하는 것은 이러한 역할의 단적인 예다.

사회의 성역할 기대와 마찬가지로 교회의 행사 때 여성 신자들은 성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식사가 친교의 중심이 되고 여성 신자들은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함께 식사하는 것은 소통과 유대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미사 후에 식사하러 오세요. 저는 식사를 준비하고 있을 거예요”라는 구역반장님의 메시지에 기쁘게만 응답할 수 없다. 식사 준비에 남성 신자들도 참여하면서 성당이 성역할이 유연화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여성학 연구자 이동옥(헬레나) 교수는 이화여대 한국여성연구원의 연구교수, 홍익대 교양교육원의 초빙교수 등을 역임했고 동덕여대, 서강대, 성공회대, 한국외대 등에서 여성학을 강의했다.


이동옥 헬레나
경희사이버대학교
후마니타스학과 교수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4-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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