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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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미사 조문단 특별기고] 봉두완 민족화해센터 건립추진위원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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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떠나시던 날 영결식장인 성 베드로 광장은 눈물과 박수 슬픔과 환호가 어우러진 절묘한 광경을 전 세계에 자연스럽게 펼쳐보였다.

 11억 가톨릭 신자의 정신적 지도자일 뿐 아니라 전 인류에 화해와 평화의 사도 로 깊게 각인되신 요한 바오로 2세는 이제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평범한 나무관 속에 누워 계셨다. 영결식장 우측 상단에 이해찬 국무총리를 비롯한 한국정부 조문사절단으로 자리를 함께 한 나는 한국을 그렇게도 좋아하고 사랑했던 교황이 남기고 간 말씀을 되새기며 교황의 안식을 위해 기도했다. 사랑은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가져온다.

 전날 비가 내릴 것이라는 예보에 모두 걱정했지만 다행히 바람만 심하게 불고 햇빛과 구름과 바람으로 복잡한 날씨였지만 비는 장례식이 끝난 오후 5시가 넘어서야 내렸다.

 성 베드로 광장과 그 주변에 모인 수백만 인파 상당수가 젊은이들이었다. 젊은이들에 대한 각별한 사랑과 관심을 보여주신 교황님의 마지막 가시는 길을 젊은이들이 환송하러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했다.

 예물봉헌이 시작되자 한복 차림 남녀가 주례자인 라칭거 추기경에게 예물을 봉헌했다. 주 이탈리아 대사관 김경석(프란치스코) 공사 부부였다. 세기의 장례식 미사에 한국 신자들이 예물을 봉헌한다는 것 자체가 감동적이었다. 감동은 계속됐다. 성찬기도가 시작되자 김 추기경이 공동집전자로서 기도문을 바친 것이다. 추기경 서임연도로 보아 서열이 상당히 높으시리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제대에서 직접 미사를 집전하는 모습은 또 다른 감동을 안겨줬다.

 두 차례나 우리나라를 찾아오셨던 교황님 한국과 한국인에게 특별한 애정을 보여주셨던 요한 바오로 2세 찬미예수! 감사합니다 하며 우리말로 인사하시던 그때 모습과 목소리가 아직도 선하고 생생하다.

 나는 분에 넘치게 교황님을 공식 비공식적으로 몇 차례나 만나 뵈었다. 1984년 방한을 앞두고 바티칸 집무실에서 마주 앉은 교황님은 의례적 말씀을 이어가다가 우리 내외가 모두 북한에서 월남한 가족이라고 하니까 갑자기 몸가짐을 바꾸면서 북한 상황을 꼼꼼히 물어보셨다. 당시 국회 외무위원장이었던 나는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파견돼 정부의 환영 준비상황 등을 말씀드리도록 돼 있었다. 교황님은 그런 것엔 아랑곳하지 않고 언제 넘어 왔느냐 현재 북한 실정은 과연 어떠냐 등 지금도 북한에 남아 있을지 모르는 가톨릭 신자와 북한 인권 문제 등에 관심을 표명하는 바람에 예정시간을 훨씬 넘긴 적이 있다.
 미사와 고별식이 모두 끝나고 교황님 관이 다시 성 베드로 대성전을 향해 움직였다. 그러나 환호하는 인파에 마지막 답례라도 하듯이 대성전 안으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광장을 향해 한동안 내려다보고 있었다. 감동 자체였다. 일흔을 넘긴 나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나왔다.

 교황님은 화해와 용서 사랑의 메시지를 전한 진정 평화의 순례자 였다. 그분이 남긴 사랑과 화해의 메시지를 기억하며 인류의 행복을 위협하는 폭력과 분열에 맞서 싸우는 것이 남은 우리가 할 일이 아닐까.
 폴란드는 정신적 왕을 잃었지만 우리 모두는 위대한 평화의 사도를 잃었다. 지금 온 세계가 다시 볼 수 없는 교황님의 미소를 떠올리며 슬픔에 잠겨 있다. 그러나 약자를 위해 기도하며 자유와 인간 존엄성 확대를 위해 끊임없이 행동했던 교황님을 추모하는 마음은 종교 인종 지역을 넘어섰다.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슬픈 양떼들과 TV를 통해 지켜보는 온 누리의 백성들에게 교황님은 행복하시오 평안하시오 하고 정겹게 손을 흔드는 것 같았다.

 나도 눈 감은 채 침묵 속에서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동안 수고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부디 하늘 나라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십시오. 교황님 사랑합니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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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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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13장 34절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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