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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요즘 대화의 소재가 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 「공간」과 「청소년」이라고 말할 것이다. 즉 대화의 내용을 곰곰이 살펴보면 「4가지 공간 파괴」에 대한 적잖은 염려와 「청소년에 대한 기대와 비난」으로 이뤄졌기 때문이다.
공간 파괴에 대한 내용은 첫째 생활공간의 파괴 둘째 일하는 공간의 파괴 셋째 노는 공간의 파괴이며 넷째는 교육공간의 파괴다.
특히 교육 공간 파괴 모습은 사회화 및 지적틀을 제공하는 주체와 공간이 무한히 확대되어 가고 있으며 학교 안에서의 위계질서와 구성원간 갈등구조가 날로 심화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러한 공간 말고도 무수한 공간이 한국사회에서 해체되거나 파괴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이러한 공간에서 밖으로 밀리고 있는 사람들이 바로 청소년이라는 것이다. 이들은 일부 공간의 파괴자로 동시에 향유자로 피해자로 중첩되고 있다. 이러한 중첩성은 바로 정체성의 파괴로 이어진다는데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청소년들이 몸담고 있는 학교는 청소년에게 생활공간 놀이공간 일하는 공간 교육공간이기에 중요한 대상이며 청소년은 이 비관적 흐름을 바꿔 놓을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기에 어떠한 고통과 인내가 따르더라도 그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놓아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가톨릭교회도 지난 선교사업의 역사를 볼 때 어떤 이유에서든 학교 교육을 선택했고 학교라는 틀을 한국사회에 제공했지만 국가 교육제도와 시스템에 자동적으로 편입함으로써 대다수 학교가 안고 있는 고통을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학생들도 다를 바 없다. 이점이 바로 우리 가톨릭 학교의 정체성 문제를 고민하게 만드는 점이다. 필자가 학교 교육과 청소년에 대해 관심 기울이게 된 것은 앞서 열거한 공간 파괴를 최소화하고 청소년을 희망의 대상으로 재창조할 수 있는 공간이 우리 사회에서는 학교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그러므로 학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 학교의 현재적 가치가 대학입시를 위한 지식교육에 두어져 있는 상황에서 학교 설립 취지에 맞는 교육을 하기란 현실적으로 많은 제약과 어려움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학교는 공간 파괴에 따른 「소외」 「정체성 상실」 「물질위주의 가치관」 등이 활개치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쳐야하며 청소년이 무한 공간에서 자유로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가톨릭 교회와 학교는 첫째 교육과 학교라는 패러다임을 확장해야 한다고 본다. 학교는 이제 지식을 전달하고 현재적 수요에 적응하는 시장 시스템의 한 부분인 동시에 미래 가치에 대한 확신을 형성하고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부분에서 지역사회 학교와 그 지역 본당과의 연계성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둘째 우리 가톨릭학교는 취학전 교육부터 대학 및 평생교육 시스템을 제공하고 있으므로 이들 교육 프로그램과 시스템을 상호 연계 시너지 효과가 연쇄적으로 발생하도록 전체 단위 교류와 협력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각 학교별로 혼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이 강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위 학교의 현재적 가치를 높여줄 것이며 또한 학교 선호도를 증가시켜 지역사회의 중심공간으로 전향될 가능성을 높여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별 다양한 서비스 개발과 프로그램 실행이 필요하므로 투자와 관심이 급선무라고 본다.
넷째는 학교교원과 시설 그리고 그 안의 프로그램이 양질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기초부문이 준비되지 않으면서 학생과 학부모의 관심과 선택을 요구한다는 것은 욕심이다.
양질의 교원 충원 프로그램이 가동되고 가톨릭 문화 및 생활이 일반 학생들에게까지 자연스럽게 선택될 프로그램이 창출되고 그것들이 체계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문화운동이 활발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에서 교육수준은 생활수준을 결정할 정도로 작용하고 있다. 누구나 교육수준에만 관심을 기울일 뿐 내 주변의 무엇이 파괴되고 있으며 무엇이 소중한가를 생각할 겨를도 주지 않는다.
이제 우리 가톨릭 학교도 파괴되어 가는 공간에 대한 관심 그 존재의 이유인 청소년과 그들의 행복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우리 교회나 우리 사회가 꽃을 원한다면 청소년과 그들이 살아가는 공간이라는 뿌리에 관심을 가졌으면 한다. 오늘도 학교에 가면 아이들을 만날 것이다. 그들은 희망의 뿌리다.

이상돈 신부 수원교구 효명종합고등학교 교목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03-0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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