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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 특집] "한발 물러서서 세상 바라보는 여유 생겨"

은퇴 후 공소에서 새로운 삶 살고 있는 장익 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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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7시 미사를 봉헌하며 책을 읽고, 산책을 하고, 찾아온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지내고 있는 장 주교는 "삶에 여유가 생겼다"며 활짝 웃었다.
 

  "잘 먹고 잘 놀면서 아주 잘 지내고 있어요. 조용한 걸 좋아해서 공소생활이 딱 맞아요."

 2010년 3월 춘천교구장에서 은퇴한 후 춘천시 외곽 작은 마을에 있는 `실레마을공소`에서 살고 있는 장익 주교를 찾아갔다. 며칠 전 소문내지 않고 사제수품 50주년을 기념한데다 부활대축일 얘기와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듣고 싶어서다. 장 주교는 "건강은 아직 그만하다. 잘 놀고 있다"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

 2013년은 장 주교에게 여러모로 특별한 해다. 만으로 여든 살이 됐고, 사제품을 받은 지 50년이 지났다. 팔순(八旬)과 금경축을 함께 맞았다. 소감을 묻자 장 주교는 "나는 그런 거 따지지 않는다"며 손을 내저었다. 장 주교는 지난달 19일 실레마을공소에서 동기ㆍ후배사제 등 지인들과 감사미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소박하게 금경축을 기념했다.

 "세월은 자고 깨다보면 지나가는 거예요. 하느님이 주신 선물이죠. 저는 내세울 게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 생일상을 받아먹는 것도 염치가 없어요. 지난해 겨울(12월 14일) 교구에서 팔순잔치를 열어줘서 축하를 받았어요. 고맙긴 하지만 송구스러운 마음이 앞서죠."

 장 주교는 공소생활을 시작한 후 여유가 생겨서 좋다고 했다. 교구장 시절에는 보람이 있어서 좋았지만 돌이켜보면 너무 쫓기면서 산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쫓기면서 여유 있게 살면 성인인데…."라고 말했다.

 장 주교는 "이제는 한발 물러서서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겼다"며 "요즘 사람들은 세상의 본질이 뭔지 모르고 살아가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e-book(전자책)이라는 게 있어요. 예전에는 정보를 얻으려면 서점에 가서 책을 사서 읽어야했는데 요즘은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컴퓨터를 이용해) 손끝만 몇 번 움직이면 어마어마한 정보를 접할 수 있어요.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기회도 많아지고 도구도 발달했는데 오히려 독서량은 줄어들고 있어요. 왜 이런 현상이 발생할까요?"

 장 주교는 "특히 젊은 세대는 정보통신기술에 익숙해져서인지 너무 급하게 산다"며 "서두른다고 과일이 빨리 익는 게 아니고, 벼를 잡아당긴다고 더 빨리 자라지 않는데 무조건 `빨리빨리`만 외치다 보니 여기저기서 문제가 생긴다"고 말했다.

 장 주교는 현대사회가 심각한 상대주의에 빠져있다고 우려했다. 저마다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점점 적어지고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진리는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장 주교는 "사회는 다수결을 강조하는데 다수가 주장한다고 무조건 옳은 것은 아니다"며 "무엇이 보편적으로 옳은 것인지 기준을 잡아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혼란스러워하고 불행을 느낀다"고 말했다.

 상대주의가 만연한 혼란스러운 현대사회에서 교회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장 주교는 "모든 성직자와 수도자, 신자들이 지금 교황님이 하시는 것처럼만 하면 된다"고 해답을 내놓았다.

 "교황님은 낮은 자세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시잖아요. 그건 남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행동이 아니에요. 바로 당신 삶인 거죠. 교황님 행동과 말씀 하나 하나가 진실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거예요. 사제는 강론을 잘하는 것보다 진실하게 사는 게 중요해요."

 장 주교는 "마더 데레사 수녀님도 `이래라 저래라` 말씀하시지 않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진실한 삶 자체로 세상을 변화시키고 많은 사람들 마음에 울림을 줬다"며 "사제와 수도자들이 자신을 낮추면서 진실하게 살면 사람들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장 주교는 서울에서 태어나 1994년 춘천교구장으로 임명되기 전까지 61년 동안 서울 4대문 안에서 살아온 `서울 사람`이었다. 그래서 은퇴 후 "언제 서울로 돌아오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장 주교는 "서울로 돌아갈 생각이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처음 춘천교구장에 임명됐을 때 `이곳에서 뼈를 묻겠다`는 생각으로 왔어요. 춘천교구 신자들을 섬기라고 하느님이 저를 이곳에 보내주셨는데 제가 어디를 가겠어요. 강원도에 살다보니까 이제 여기가 편해요. 공기도 좋고…. 이곳에 20년 가까이 살다보니까 서울에 가면 고단해요."

 장 주교는 요즘 「하루 3 시간 엄마 냄새」라는 책을 재밌게 읽고 있다며 꼭 읽어보라고 추천했다. 다소 근엄해 보이는 장 주교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는 책 제목이었다. 라디오를 듣다가 알게 된 책이라고 했다.

 "부모들이 읽으면 아주 재미있을 거예요. 요즘 어려서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아기들이 많잖아요. 아기가 3살 될 때까지는 엄마가 적어도 하루 세 시간은 곁에 있어줘야 아이 정서가 안정돼요.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의 근원을 이야기해주는 책이에요. 아주 재미있어요."

 1933년 태생인 장 주교는 1963년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서울 대방동본당 보좌, 교구장 비서, 정릉ㆍ세종로본당 주임을 거쳐 1994년 주교ㆍ춘천교구장이 되어 만 15년간 춘천교구를 이끌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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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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