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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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5) 저자를 알아야 본문을 안다

저자·역사 배경 살피는 ‘역사비판적’ 연구 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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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재조명한
르네상스 기점으로 ‘역사비평’ 활발
대상 이해 위해 시초부터 탐구 필요

 
본문 뜻 알려면 저자 의도 파악 우선
저자 속한 문화·시대까지 이해 강조
문학 유형·삶의 자리 알고 해석해야
 
 
이제부터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기획에서는 4주 동안 ‘성경 해석의 흐름’을 다루게 된다. ‘현대 가톨릭 성경 해석의 흐름’이라 하니, 주제가 어렵다기보다 제목이 어렵다. 그래서 미리 몇 가지 전제를 달아 놓고 시작해야 겠다.

첫째로, ‘흐름’에 대한 이 글은 물 흐르듯 계획없이 시작해야 하겠다. 근-현대의 성경 해석이 시작될 때에 아무도 이 흐름이 어디까지 갈 것인지, 어떻게 방향이 바뀌어 갈 것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흐름이 한 방향으로 기울다 보면 문제점이 발견되고, 또 어떤 새로운 자극을 받으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했던 것이 특히 20세기에 나타났던 성경 해석의 흐름이었던 것 같다. 필자도 독자도 그저 이 흐름에 몸을 맡길 수밖에 없겠다.

둘째로, 우리의 관심사가 ‘가톨릭’ 성경 해석이라고 해서 가톨릭교회 밖의 성경 해석을 배제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가톨릭 성경 해석의 흐름을 좌우한 많은 요인들은 가톨릭교회 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을 시작하는 지금에야 비로소 어떤 이들이 가톨릭 학자들이고 어떤 이들이 ‘비’가톨릭 학자들인지 알아내려고 애쓰고 있다.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셋째로, ‘현대’ 가톨릭 성경 해석이라고 했으니 최소한 16세기까지의 역사는 일단 덮어두고 시작하겠다. 덮었던 뚜껑은 마지막에 가서 다시 열도록 하겠다. 그 이유는 - 미리 알면 재미가 없다!


■ 고대의 저자를 찾아

르네상스(Renaissance), 즉 문예 부흥. 여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겠다. 오래된 일이기는 하지만 르네상스는 근-현대를 향해 방향을 잡는 첫걸음이었기 때문이다.

르네상스라는 단어의 의미는 본래 ‘다시 태어남’인데, 이때에 다시 태어난 것은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문화였다.

이탈리아에서 일어나 프랑스, 독일 등지로 퍼져 나간 이 운동의 영향으로 유럽인들은 고대의 언어와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했고, 고전 문학 작품들을 비판적으로 해석하게 되었다. 고대의 사본들이 새로 출간되고 이와 더불어 그 저자들에 대해서, 역사적 배경에 대해서 학문적으로 연구하게 되었다. 18세기 진화론과 19세기 역사학의 발전도 한몫을 했다. 지금 이 세상에 있는 무엇인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시초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성경에 대한 역사비판적인 연구가 싹트기 시작하여, 우리의 관심사인 성경 해석의 흐름은 20세기 초까지 대략 같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니, 이 흐름은 21세기에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해야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다른 흐름들이 생겨나기까지는 이 흐름이 점점 커져가며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저자를 알아야 본문을 안다” – 이 시기에 융성한 역사비평의 입장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다. 여기서 묻는 것은 언제(시대 배경), 누가(저자), 누구를 위해서(예상 독자) 이 본문을 썼는가 하는 문제다.

처음 이 문제가 제기된 것은 주로 모세오경에서였고, 현재에도 역사비평이 적용되는 가장 대표적인 영역은 모세오경의 연구다. 유다교에서나 그리스도교에서나 전통적으로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가 썼다고 여기고 있었는데, 이를 반박하는 주장들이 나오게 되었고 점차로 모세오경이 형성된 과정을 역사적으로 밝히려는 시도들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이러한 시도들은 전통에 대한 도전으로 받아들여졌고, 전통에 대한 도전은 동시에 신앙에 대한 위협으로 인식되었다. 유다교 전통 안에서도 모세오경 가운데 신명기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모세의 죽음에 대한 기사는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 여호수아가 썼다는 전승이 있기는 했지만 오경을 전체적으로 놓고 볼 때에는 저자가 모세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았었는데, 모세오경이 모세보다 훨씬 늦은 시대에 기록된 것이라는 주장들은 수용될 여지가 없었다.

신약성경, 특히 복음서들에 적용된 역사비평은 더욱 위험하게 보였다.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이나 행적과 그 후에 복음서를 쓴 저자의 말이 구분되었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는데 복음서 저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했다고 주장하였으며, 때로는 성경에서 예수님에 대해 진술하고 있는 내용이 예수님 자신의 삶이나 그분의 의도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그 가치를 제한하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맥락 안에서 교회는 역사비평 방법을 수용하는 데에 매우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모세오경이 4개의 문헌들로부터 이루어진 것이라는 가설이나 이사야서 전체가 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는 주장을 인정하는 것을 교회가 얼마나 어려워했는가를 오늘날의 입장에서 보면 의아하게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교회만의 태도 문제는 아니었다.

비판적으로 성경을 연구하던 이들 역시 때로는 일면적이었다. 그들이 언제나 그들의 연구 대상을 적절하게 이해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는 자연과학과 역사학의 이름으로 성경 저자들이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하거나 성경의 모든 부분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라고 간주하는 이들도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밀고 당김 속에서 역사비평은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 갔고, 교회 교도권도 점차로 역사비평의 긍정적인 공헌을 인정할 수 있게 되었다.

1893년 레오 13세의 회칙 ‘섭리하시는 하느님(Providentissimus Deus)’과 1943년 비오 12세의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afflante Spiritu)’에서는 성경 저자들이 사용한 표현법을 올바로 알아듣고 하느님께서 그 저자들을 통하여 구원을 위하여 필요한 진리를 가르치려 하셨다는 것을 올바로 이해한다면 성경은 자연과학이나 역사학과 모순될 수 없다고 말하면서,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인지 규명하기 위하여 고대인들의 문화와 표현 방식 등을 연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선언하여 역사비평적 연구의 정당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가톨릭신문  2013-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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