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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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른 하느님] "물처럼 생각하고 물처럼 살면" 물 위기 저절로 해결

4. 동양사상에서 바라본 물 / 사람은 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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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유연함으로 다른 사물에 스며들어 그들을 유연하게 만든다.
메마른 땅과 마른 나무, 시든 식물 모두 신선한 물이 닿으면 부드러움을 되찾고 생명력을 회복한다.
사진은 일본 고토 오오세자키 등대와 바다.
 


<연재 순서>

1. 물은 생명이다
2. 생물학적 관점으로 본 물
3. 물에서 배운다
4. 동양사상에서 바라보는 물
5. 물은 모두의 것이다 


 #물 위기, 생명 위기

 세계는 지금 물 부족, 물 기근으로 심각한 존재론적 위기에 처해 있다. 세계미래학회를 비롯해 세계 지도자들은 물 위기로 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예측하고 있다. 물 기근은 지구 평화를 위협하는 최대 난제다. 물 위기를 해결하지 못하면 미래 세대의 존속은 보장할 길이 없다.

 이를 유엔(UN) 차원에서 해결하고자 하는 시도가 바로 `세계 물 포럼`이다. 3년에 한 번씩 개최되는 이 포럼에서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지만, 거의 수질 관리나 물의 공정한 분배 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이런 방식은 근본적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에 동아시아의 물 사상을 통해 그 해법을 찾아보고자 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다. 「태일생수」(太一生水)에서 물은 천지가 생기기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 세계의 만물생성에 절대적 조력자로 활동한다. 그런데 그 방식은 놀랍게도 매우 간단하다. 한 번은 채우고 한 번은 비우며 약함을 우선 돕는 것이다. 물은 천도(天道)를 실현하는 중심 주체이면서 자기가 없는 존재방식을 취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춘추전국시대 성인들 삶의 모습은 모두 물을 닮아 있다. 그러므로 이 글의 취지는 물의 속성 자체에서 위기의 해법을 찾자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래 세대의 윤리적 근거를 물의 존재방식에서 찾아보자는 것이다.

 
 #지혜의 상징

 옛사람들이 덕을 닦는 데 물의 이미지는 매우 중요한 모티브로 작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탕임금은 세숫대야에 `진실로 날로 새로워지면 나날이 새로워지고, 또 날마다 새로워진다(苟日新, 日日新, 又日新(「大學章句」)`라는 글귀를 새겨 매일 아침저녁으로 마음에 새겼다. 탕임금은 대야의 물을 통해 몸과 마음을 비춰보며 날마다 자신을 정화했던 것이다. 「논어」(자한편)에서 공자는 `가는 것이 흐르는 물과 같도다. 밤낮없이 쉬지 않는구나!`라고 함으로써 부단히 덕을 새롭게 하는 물을 찬탄한 바 있다. 또한 「논어」(옹야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고 했다. 이처럼 물은 일신(日新)의 상징, 지혜의 상징이었다.

 사람도 물처럼 날마다 지혜를 얻어 새로워지지 않으면 변화하는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고인 물은 썩고, 썩은 물은 생명을 살릴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물은 부단히 흐르면서 자기를 새롭게 하고 만물에 생명력을 부여한다. 그 힘은 물의 유연성에서 비롯된다. 유연성은 생명과 절대적 관계를 맺고 있다.

 노자 철학에서 유연성은 생명력의 원천이다. `사람이 살아 있을 때는 부드럽지만 죽으면 뻣뻣해진다. 만물과 초목도 살아 있을 때는 유연하지만 죽으면 딱딱해진다. 그러므로 뻣뻣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러운 것은 살아 있는 무리다"(「도덕경」 76장).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조응하려면 생각과 마음이 굳어지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수양을 게을리해서 생각과 마음이 굳어지면 유연성을 상실하고, 유연성을 잃고 사고가 경직되면 남과 소통할 수 없게 된다. 불통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유연성은 소통의 수단이고, 생명을 지키는 길이다. 그러므로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다면 뻣뻣하고 단단해지는 죽음의 길로 빠져들지 않을 수 있다.

 물은 자신의 유연함으로 다른 사물들에 스며들어 그들을 유연하게 만든다. 메마른 땅, 마른 나무, 시든 식물 모두 신선한 물이 닿으면 부드러움을 되찾고 생명력을 회복한다. 이 세상에 물보다 부드러운 것은 없다. 하지만 물은 어떤 견고함도 이겨낸다. 유연성으로 만물과 자유자재로 소통하고 생명을 유지하는 물보다 더 큰 지혜가 있을까 싶다.

 
 #사람은 물이다

 동아시아 문헌 가운데 특별히 눈길을 끄는 것은 「관자」(수지편)이다. `사람은 물이다`라는 견해는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주장이다. 수지편은 물을 인체의 감각기관을 형성하는 절대적 질료로 보았는데 그 내용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사람은 물이다. 남녀의 정기가 결합하면 물이 흘러 (태아가) 형성된다. (…) 3개월이 지나면 오장이 형성되는데, 신맛은 비장을 주관하고, 짠맛은 폐를 주관하며, 매운맛은 위를 주관하고, 쓴맛은 간을 주관하고, 단맛은 심장을 주관한다. 오장이 다 갖춰지면 비장은 횡격막을, 폐는 뼈를, 위는 뇌를, 간은 피부를, 심장은 살을 생성한다. 그다음엔 아홉 개의 구멍(九竅)이 생긴다. 비장은 코를, 간은 눈을, 신장은 귀를, 폐는 구멍을 만든다. 5개월이 지나면 감각기관이 모두 완성되며 이 때 비로소 태아가 움직이고 산모가 태동을 느낀다. 열 달을 채워 태어나면 눈이 보이고(目視), 귀가 들리고(耳聽) 마음으로 생각한다(心慮).`

 인용문에서 사람의 육신은 물에서 시작되고 물의 성장과 더불어 완성된다. 물에서 비롯된 감각적 기능은 고도의 인식능력으로 확장돼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것까지 인식할 수 있게 된다. 마음이 사려하는 바는 거친 것뿐만 아니라 미묘한 것까지도 살펴 알 수 있다. 그래서 깊고 어두워 은미한 것은 물론 고요하고 적막한 것까지 살펴 알 수 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미묘함을 살필 수 있는 것은 인간이 지닌 최고의 인식능력이다.

 인간은 이러한 인식능력으로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잡을 수도 없는 도(道)에 대해 인식할 수 있고 실천할 수 있다. 도란 무엇인가? 노자 철학에서 물은 비가시적인 도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사물이다.

 
 #상선약수(上善若水)

 「도덕경」 8장에서 물은 다투지 않고(不爭) 낮은 곳에 처하면서(處下)도 만물을 이롭게 한다(利物). 그러므로 거의 도에 가깝다(水幾於道). 그래서 진정한 선은 물과 같다(上善若水)고 하는 것이다. 여기서 `상선`은 도를 의미한다. 상선은 선악의 선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선악의 대척점에 서 있는 선은 개념상 늘 악과 다퉈야 하지만, 선악의 구별이 없는 상선은 다툴 필요가 전혀 없다.

 다퉈서 이긴 선이라면 악이 불식되지 않는 한 다툼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물처럼 다투지 않으



가톨릭평화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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