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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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신앙의 재발견] (25) 선교의 열정 (상)

경쟁하듯 양적 선교 치우쳐온 모습 바뀌어야/ 이벤트성 활동 갈수록 쇠락/ 올바른 ‘선교’ 의미 인식 과제/ 이를 바탕으로 방법 세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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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활동의 목적은 구원이다. 때문에 선교와 교회는 당연히 불가분의 관계를 갖게 된다. 선교는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인 것이다. 한국교회 또한 선교를 통해 형성됐다. 하지만 한국 신자들은 과연 ‘선교’를 나의 소명, 나의 의무이자 권리로 철저히 인식하고 있을까. 21세기 들어 한국교회가 더욱 많이 고민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신앙의 해 자의교서 ‘믿음의 문’은 특별히 ‘신앙의 해’ 동안 “신자들이 세례 때 받은 신앙의 은총과 그 증언의 책무를 재발견할 수 있도록 선교와 다른 프로그램들을 증진하는 것도 적절하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선교역량은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어지는 은사인가? 하느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전하고자 하는 열의만 있으면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일인가?

이번 호에서는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밝히는데 언제나 최우선으로 꼽히는 요소인 ‘선교(파견)’의 올바른 의미와 적용 방안 등을 환기한다. 이를 위해 외적 성장에 치우쳐온 한국교회 선교활동을 성찰하고 ‘복음화하면서 복음화 되는 공동체’의 모습을 갖추기 위해 나아갈 방향을 2회에 걸쳐 짚어본다.



성장주의적 선교의 한계

용기를 내어 ‘천주교는 당신을 초대합니다’라고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거리로 나서본다. 오가는 이들 대부분은 힐끔힐끔 쳐다볼 뿐이다. 차 한 잔 건네며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라고 목청껏 외쳐도 누군가의 마음에 다가서기는 힘들다. 방문선교 울타리는 가두선교보다 더욱 높다. 비신자 뿐 아니라 냉담교우들도 대부분 찾아오는 신자들을 문전박대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나마 이러한 선교운동 열기는 몇 달 몇 년간 이어지다 사그라지기를 반복, 각 사목현장에서는 이벤트성 선교운동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 예로 1990년대 한국교회에서는 이른바 ‘새로운 양 찾기’, ‘잃은 양 찾기’ 운동이 전국 각 교구에서 붐을 일으킨 바 있다. 당시 어느 정도 규모 있는 본당이라면 수백 명에서 천 명까지 예비신자를 모집하는 사례도 왕왕 나왔다. 하지만 이러한 이벤트식, 단발성 캠페인식 선교운동을 통한 양적 성장세는 이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직접 선교에 대한 호응도도 점점 떨어지고 있다.

한국교회 교세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를 기점으로 50여 년간 10배가량 증가했지만, 최근 들어서는 발전과 성숙이 아니면 쇠퇴와 고사(枯死)의 길로 달려가는 기로에 서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게다가 대규모 선교운동은 냉담교우를 양산하는 하나의 원인으로도 지적받는다.

무엇보다 신자들 스스로가 ‘선교’라는 단어에 부담감을 느끼는 것이 현실임을 냉정히 돌아보고, 근본적인 대안을 적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선교의식 교육의 부재

한국교회는 단시간에 눈에 띄는 성장세를 이뤄왔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단시간 내 빠르게 교세가 확장된 것은 한국인들의 강한 종교심과 다른 종교에 비해 비교적 높은 호감도가 큰 역할을 했다고 덧붙인다. 한국의 비종교인 가운데에서는 종교를 찾고 또 갖기를 원하는 이들이 많아 상당 기간은 가톨릭 예비신자 후보군도 넘쳐난 덕분에 더욱 급속하게 성장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특히 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심상태 몬시뇰은 “한국교회의 폭발적 성장세가 끝나기 무섭게 밀어닥치는 쇠락 현상은 ‘선교 개념’을 올바로 뿌리내리지 못하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과 가르침을 내적으로 체화하지 못한 것이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실제 한국교회 안에서 선교는 일종의 ‘세력 확장’의 의미로 인식돼 왔다. 현재 가장 시급히 요청되는 것도 이러한 성장주의적 선교 개념과 선교 정책의 쇄신이다.

선교학 교수인 유희석 신부(수원가톨릭대)는 “그동안 한국교회는 신자 수를 늘이는데 매진하느라 ‘어떤 것인 선교인가’에 대해 숙고하고 올바로 체득하지 못한 것이 현실”이라고 밝혔다.

특히 선교에 대한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교육 부족으로 세례 받은 이들은 모두 선교사라는 개념은 물론, 교회의 미래가 선교에 달려있다는 마음가짐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의식은 신자들에게서 뿐 아니라 성직·수도자들에게서도 드러나는 모습이다.

유 신부는 “한국교회에서는 대부분의 신앙생활을 본당 신자들을 위한 성사생활에 국한시키는 소극적인 모습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스스로 교회를 찾지 않거나 신앙을 거부하는 사람들에게 특별한 선교적 노력을 기울여야할 긴박성과 위기를 덜 느끼고 있다”고 전한다. 본당 신자들에서 나아가 지역사회 이웃들과 함께 호흡하며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적극적인 ‘지역 선교’는 자리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본당 사목 현장에서는 선교의 의무를 예비신자 인도 수준 정도로 인식하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사목자가 관할 구역 내 비신자들을 만날 기회나 시간을 내지 못할 뿐 아니라 그 중요성과 필요성을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쉽게 마주할 수 있다.

‘선교’와 ‘복음화’

경쟁하듯 양적 선교에 치우쳐온 모습을 쇄신하기 위해서는 우선 ‘선교’에 대한 올바른 의미를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즉 선교사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가 주어져야 한다. 이 이해를 바탕으로 구체적인 선교방법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선교’와 ‘복음화’에 대한 이해는 선교 개념을 보다 정확하게 인식하는데 도움이 된다. 선교와 복음화는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의미를 지니지만, 서로 보완하고 때로는 동일한 의미를 드러낸다.

선교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사도들에게 직접 말한 진리를 듣지 못하고,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 그 가르침을 선포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복음화는 그리스도 부활의 메시지를 선포하고 생활화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다. 일상에서 복음적 가치를 드러내는 것이 복음화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이 ‘복음화’라는 표현은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말씀의 선포와 같은 의미로 사용돼 왔다. 특히 교황 바오로 6세는 ‘현대의 복음 선교’에서 ‘복음화’(evangelizatio)라는 용어를 도입하면서 “선교는 복음화의 한 부분으로서, 복음화를 위해 수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의 모든 활동이 복음화라면, 모두가 선교사’라는 의식이 확산돼 왔다.



 
▲ 선교는 복음화의 요소로서,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선포하고 깨닫게 하는 것이다.
사진은 대전교구 금남공소 신자들이 선교 선포식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는 모습.
 
주정아 기자 (stella@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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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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