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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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뿌리 깊은 나무가 되어] 3. 교회의 가르침으로 다녀지는 신앙 <1>누가 나를 이끌어 주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겠습니까? (사도 8,31)

교회 가르침, 구원의 길 안내하는 ''신앙의 내비게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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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길눈이 무척 어둡다. 병자영성체를 주러 제 발로 걸어들어간 길인데도 나오면서 헤맬 정도다. 내가 기억한 주요 지점에 다른 건물이 생기면 그 길은 전혀 새로운 길인 양 헤맨다. 운전할 때는 더 그렇다. 많아야 1년에 몇 차례 운전하는 내게는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와 건물들이 나를 당혹하게 한다. 어쩔 수 없이 운전해야만 할 때는 지도를 꺼내놓고, 주요 도로와 교차로를 따로 적어 그대로 따라간다.

 나 같은 사람을 위해 마련된 가장 큰 선물이 내비게이션이다. 어찌나 신통방통한지 목적지만 정해놓으면 알아서 길 안내를 해준다. 요즘은 기술이 더욱 발전해 몇 번 차로로 가야 하는지도 알려주고, 주유소까지도 알려주니, 이젠 지도책이 없어도 되고, 건물이 새로 생겨도 당황하지 않게 됐다.

 그런데 모든 내비게이션이 다 완전한 것은 아니다. 같은 곳에서 빙빙 돌게 하거나,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때도 있다. 그래서 사람들 사이에 어떤 회사 것이 좋다거나 어떤 소프트웨어가 좋다며 선호하는 제품이 있다. 그 제품을 쓰면 헤매지 않을 수 있고, 기름과 시간도 낭비하지 않기 때문이다.


 
▲ 교회의 가르침은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다.
교회의 가르침은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해준다.
 
 
#교회의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교회의 가르침이란 한 마디로 `신앙의 내비게이션`이라고 할 수 있다. 내비게이션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는 도로와 지명뿐 아니라 급커브 지역, 제한속도와 일방통행 같은 여러 가지 조건과 통행량, 낙석 지역 같은 환경도 자세히 조사해서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교회의 가르침도 어느 한 개인의 주관적 생각이나 주장이 아니라 구약과 신약 성경 전체와 사도들과 교부들에게서 내려온 가르침, 교회의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현 시대의 문화와 과학ㆍ경제ㆍ환경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해 인간 구원의 길을 자세하게 안내하는 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왜 교회의 가르침이 필요한가?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인류 구원의 문이 열렸지만, 모든 인간이 그 문 안으로 들어간 것이 아니다. 현재 세상을 사는 우리는 아직 그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어떤 이들은 충실하게 살아서 그 문으로 들어가겠지만, 그 문으로 가는 길을 아직 알지 못하거나 찾지 못한 사람들도 많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전 인류가 그 구원의 길에 들어서고, 또한 충실히 그 길을 걸어서 구원의 문 안으로 들어가도록 해야 할 사명을 부여받았다. 그래서 사도시대 때부터 교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구원의 길을 따라 하느님 나라 문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길 안내를 해왔으며, 이 길인지 저 길인지 헷갈려 하는 사람들에게 확실한 이정표를 제시해왔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는가?
 교회를 통하지 않고서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고 단언할 수 없다.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느님 일이기 때문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에서도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교회헌장」 16항)고 천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가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말인가? 내비게이션 없어도 운전자가 알아서 스스로 목적지를 찾아갈 수는 있겠지만, 잘 알고 있는 지역이 아니라면 엉뚱한 곳에서 헤매게 될 가능성이 있다. 하느님 나라에 가보지 않은 사람이 어떻게 그 길을 안다고 자부할 수 있으며, 스스로 길을 찾았거나 찾을 수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인간이 하느님께 올바로 나아가서 구원에 이르고자 한다면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권한으로 가르치는가?
 세상에는 큰 목소리를 내며 자기 주장만 내세우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이 올바른 지식과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공동체 전체를 위해 말한다 하더라도 그 방식 때문에 받아들이기 어려울진대, 지식도 없이 자기 기분에 따라 그릇된 판단을 하면서도 고집을 부린다면 많은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것이다. 예수님 시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들은 스승에게 배운 지식을 바탕으로 나름대로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서도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고,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다. 그 행위의 바탕에 사랑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의 지식을 바탕으로 백성을 가르칠 자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 말과 행위에는 인간적 권위밖에 없었다.

 이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신적 권위를 지니고 계셨다. 그 말씀과 행위는 보는 이들마다 경탄하게 했고, `도대체 이분이 누구신가?`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이런 권위를 지니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와 사도단에게 직무와 권한을 주셨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시몬 바르요나야, 너는 행복하다! 살과 피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것을 너에게 알려 주셨기 때문이다. 나 또한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이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울 터인즉, 저승의 세력도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또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7-19).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다가가 이르셨다. `나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 보라.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18-20).
 
 #교도권이란
 사도들의 직무 가운데는 사제직과 예언직, 왕직이 있고, 이 가운데 진리를 선포하는 직무를 예언직이라 하는데, 이 예언직을 수행하기 위해 하느님 백성을 가르치는 것을 교회의 가르침 혹은 교도권이라고 한다.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황과 주교들은 계시의 곳간에서 새것도 꺼내고 옛것도 꺼내 성령의 빛을 비추어줌으로써 진리의 빛을 밝히고, 하느님 백성이 그 빛을 따라 구원의 길을 걸어가도록 도와준다.

 교회의 가르침은 새로운 계시를 선포하는 것



가톨릭평화신문  2013-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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