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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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뿌리깊은 나무가 되어] 3.교회의 가르침으로 다져지는 신앙<4.끝> 참된 신앙인이 되는 길

교회는 구원으로 나아가는 길 가르치는 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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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중심으로 교회 가르침에 따라 자신을 성찰할 때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할 수 있다.
 
 
 서울대교구의 특수사목 신부들 24명이 함께 사는 공동 숙소인 성김대건관. 이곳 식당에서 주로 이용하는 두 개의 식탁 가운데에는 제법 큰 약상자가 있다. 그 약상자 안에는 여러 개의 약병이 들어 있는데, 어떤 질병에 대한 약이 아니라 비타민을 비롯한 건강보조 약품이 대부분이다. 40대와 50대 신부들이 주를 이루고, 몇몇 30대 신부들이 있는 곳에서 무슨 약을 그렇게 많이 갖추고 있을까 싶을 정도로 그 약상자 안에는 제법 많은 약병이 있다.
 

 처음 그 약상자를 봤을 때에는 많은 가정에서 그렇듯 약을 사다 놓기만 하고 잘 먹지 않으리라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 예상이 빗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엔 병에 든 약도 비타민 하나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잘 먹지 않았는데, 요즘은 식사 후에 약상자 안의 여러 약통에서 약들을 꺼내 한 움큼씩 먹으면서 이것이 무슨 대단한 보약이라도 되는 것처럼 서로 챙겨준다.

 
 현대인들이 가장 관심 있는 주제 중 하나는 건강이다. 본래 인간은 고래로 무병장수를 희망해왔으니 건강을 바라는 것이 현대인들만의 특징은 아닐 것이다. 무병장수를 원하는 선조들은 호흡법이나 심신단련을 통해 건강도 지키고 장수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몸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이 중요하므로 감정을 절제하고 제어하기 위한 노력에 많은 힘을 기울였다.
 
 건강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서는 적당히 먹고, 적당히 운동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숙면을 취하는 것이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 그런데 바쁜 현대인들은 기름진 음식을 폭식하고, 걸을 수 있는 거리를 차 타고 다니며, 여러 가지 스트레스에 짓눌리고, 밤늦게까지 자기 취미 생활을 하느라 늦게 잠자리에 든다. 이런 모습은 건강을 위한 생활습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러면서도 건강을 지키고 유지하거나 건강해지기를 원한다. 그래서 찾는 것이 바로 약이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해야 할 기초적인 노력을 게을리하면서도 약을 통해 건강해지리라 기대하고 맹신하기까지 한다.
 

 이런 모습은 신앙생활을 하는 데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며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 머물려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어떤 기도를 바치거나, 어느 성지에 가거나, 기적의 패나 스카풀라 같은 성물을 소지함으로써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는 것이다.

 
 ▨신앙생활의 중심은

 신앙생활에서 중심은 하느님과의 관계이며, 따라서 신앙생활이란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위해 노력해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을 가르쳐 주셨고,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위한 나눔(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의 중요성과,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부자 청년) 아버지의 뜻을 실행해야 함을 깨우쳐주셨다. 그러므로 모든 신앙인은 이 가르침에 따라 세속적인 욕망에서 벗어나 이웃을 위해 자기 자신을 기꺼이 내어놓고 그리스도의 뒤를 따라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을 걸어가야 한다.

 
 그런데 영적으로 나약한 인간이 자기 스스로 이 길을 충실히 걸어가기 어려우므로 기도 때마다, 미사 때마다 주님께 은총을 구하며, 그 은총에 힘입어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해야 한다. 건강해지고자 하는 사람이 매일 음식을 절제하고, 매일 적당한 운동을 해야 하는 것처럼 신앙생활도 어쩌다 한 번 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노력해야 하기 때문에 참된 신앙인이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그래서 한국의 많은 천주교 신자들은 신앙생활에서조차 약을 찾는다. 자신의 부족한 노력을 채워줄 수 있는 효과 빠른 특효약을 찾는 것이다. 기본적인 신앙생활과 사랑의 실천을 게을리 하면서도 말로만 바치는 기도나 성물들을 통해 영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을까? 이는 수험생이 시험공부를 하지 않고 컴퓨터 게임만 하다가 십자고상을 끌어안고 자면서 시험을 잘 치르게 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 이런 허황된 믿음과 허황된 기대가 자신을 망치고 만다. 참된 신앙인이 되는 것은 요행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른 신앙생활을 함으로써만 가능할 것이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

 교회는 하느님 백성에게 하느님 말씀인 성경을 해석해 준다. 우리가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감으로써 하느님 나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길을 제시해 주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부모님에 대한 봉양을 소홀히 하면서 하느님께 대신 바쳤다는 의미로 `코르반`이라고 하면 된다고 믿었고, 이런 나쁜 관행에 대해서 예수님께 꾸지람을 들었다. 이는 백성의 지도자들이 잘못 가르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교회는 성경에 대한 개인적인 해석을 용납하지 않는다. 본인만 그릇된 길로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하느님 백성들까지도 진리의 길을 벗어나 오류에 빠지게 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올바로 성경의 말씀을 이해하고, 그 말씀에 비춰서 자신의 삶을 성찰하는 사람들은 함부로 다른 이들에게 손가락질하지 않는다. 자신의 어둠과 나약함을 부끄러워하며 하느님께 은총과 자비를 청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할 때 다른 이들의 허물을 들추어낼 자격이 없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 안에 속해 있으면서 교회나 교회 봉사자들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그런 행위를 통해서 자신이 신앙인이 아니라 종교인임을 드러내고 있다.
 
 세상에는 자신을 돌아보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비난하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이들은 예수님 시대에도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안다고 자부하던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의 모습을 닮았다. 율법교사와 바리사이들이야말로 성경 안에서 율법의 규정들만 따질 줄 알았지, 그 내면에 깔린 사랑의 정신은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자기 스스로 의인임을 자처하면서 다른 이들을 함부로 판단하고 단죄하며 살다가, 예수님 앞에 섰을 때 누구보다 작아지게 됐다. 교회 가르침에 따라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참된 신앙인으로 성장해갈수록 이웃의 눈 속의 티보다 자기 눈 속의 들보를 빼내려는 마음으로 살아가게 된다.
 
 ▨ 찬양과 전례

 교회는 흩어진 하느님 백성들을 불러 모아 함께 하느님을 찬양하며 일치



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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