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행복, ‘영원불변한 하느님’ 통해서만 가능/ 갈수록 개인 안에서 행복 찾고 ‘초월적 존재’에 무관심/ 이성·양심만으로는 ‘한계’ … 보편적 진리 추구 어려워/ 인간성-신성 보존된 ‘육화된 말씀’에 궁극적 의미 내재
허무주의·무신론이 가져온 ‘의미의 위기’
영원하고 불변한 진리에 대한 확신이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의미의 위기’이다.
이론적인 회의주의로부터 시작한 불안감은 세계와 인생을 해석하는 관점들의 다양성 안에서 자칫 냉소주의와 허무주의(nihilismus)로 빠져들 수 있다. 회의주의가 독단적인 사상체계에 대한 반발로 등장했듯이, 이러한 허무주의도 인간 능력에 대한 과도한 기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등장한 것처럼 보인다. 근대 이후에 발전한 “다양한 철학 체계들은 사람들이, 그들이 자기 자신의 절대적 주인이고 자기 운명과 미래를 완전히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고 자기 자신과 자기 능력들만을 신뢰하도록 현혹”(「신앙과 이성」 107항)시켰다. 인간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게 된 이들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이성은 끊임없이 진보하며 모든 행복과 자유를 성취하리라고 보는 ‘합리주의적 낙관주의’를 주장했다.
그렇지만 이러한 낙관적인 기대감은 20세기에 들어서며 체험했던 가공할 결과를 통해 처참하게 무너졌다. 제1·2차 세계대전이란 엄청난 참상 앞에서 인간들은 근본적으로 이성중심의 근대적 사고가 인간에게 점점 더 행복을 가져다주리라는 기대를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물질적인 풍요와 편의를 제공해 주던 과학과 산업의 발전이 환경오염을 비롯해서 전 지구적인 위기를 가져오자 이성에 대한 의심은 더욱 강해졌다. 20세기 전반기를 특징지어 온 이러한 실망과 의심을 통해서 허무주의는 점차 확산되었다. 허무주의에 따르면, 인생은 덧없이 지나가고 찰나적이기 때문에 의미있는 일을 위한 결정적인 투신이란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신앙과 이성」 91항 참조). 이러한 허무주의가 가져온 절망의 유혹이 21세기에 접어든 우리를 무섭도록 위협하고 있다.
이러한 ‘의미의 위기’가 다가왔을 때 기존의 종교들은 충분한 해답을 제시하지 못했다. 더욱이 근대를 지나며 민주화된 서구 세계에서 그리스도교는 기득권자들의 편으로 간주되며 급격하게 그 영향력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일부 지성인들은 이러한 기성 종교에 대한 실망감으로 인해 ‘무신론적 인본주의’(humanismi athei)라는 경향에 심취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의 대표자들은 종교를 인간이 지닌 충만한 합리성을 소외시키는 ‘민중의 아편’이라고 폄하했고, 자신들의 사상체계가 기존의 종교를 대체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러한 무신론의 체계는 그 이전보다 더욱 강하게 인간들을 소외시키는 모순된 결과를 낳았으며, “정치적-사회적 영역에서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다 준 전체주의적 체계들로 귀결”(「신앙과 이성」 46항)되고 말았다. 대표적인 전체주의 체계를 지녔던 옛 소련이 1989년에 붕괴되면서 이런 이데올로기는 현실적으로 실패하고 말았지만, 서구를 중심으로 허무주의와 무신론적인 경향이 널리 퍼지면서 현세적인 행복을 절대화하는 경향이 생겨났다. 현대인들은 행복을 점점 더 자기 자신 안에서 찾고, 일체의 초월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내재의 테두리 안에 갇히고 말았다.
▲ 한 신자가 피정 중 기도를 바치고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처럼 진정한 행복은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해서만 도달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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