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교자들 삶, 우리 삶으로 비춰보면- 순교 정신, ''현대적 읽기''부터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김민수 신부는 "한 대학 교수는 `한국에 이런 순교자가 있었나. 이 이야기는 (천주교)신자뿐 아니라 국민이 모두 알아도 좋겠다. 한국교회가 문화 콘텐츠화에 좀 더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며 순교자들 삶과 신앙을 `스토리화`하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순교자들 가운데에는 현대식으로 재해석하면 귀감이 될 수 있는 이야기가 참 많다. 최경환(프란치스코) 성인 아내이자, 한국의 두 번째 사제 최양업(토마스) 신부 어머니인 이성례(마리아, 1801~1840)는 1839년 기해박해 때 젖먹이 아들 스테파노와 함께 감옥에 수감돼 갖은 문초를 당한다. 형벌로 팔이 부러지고 살이 너덜너덜해졌으나 용감하게 신앙을 증거한다. 그러나 젖이 나오지 않아 막내아들이 굶어 죽어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 집에 돌아간다. 그 뒤 최양업이 신학생으로 선발돼 중국에서 유학하고 있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다시 체포돼 용감히 순교한다.
젖먹이가 더러운 옥에서 굶는 것을 보고 한 번 배교할 수밖에 없었던 그의 모성애는 우리 시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전통적 효(孝) 사상이 사라져가고 있고, 부모와 자녀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쉽게 낙태를 생각하기도 한다. 신문 사회면에는 부모가 자녀를,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등 반인륜적 범죄 기사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런 때일수록 이성례가 보여준 절절한 자녀 사랑은 우리 시대를 향한 `작은 울림`이 된다.
성폭력과 성매매 등 각종 성 관련 범죄가 만연해 있고 이혼 증가 등으로 참된 부부의 의미가 퇴색해가는 요즘, 동정부부 유중철(요한, 1779~1801)ㆍ이순이(1782~1802, 루갈다)의 삶은 우리를 반성하게 한다. 신앙을 위해 동정의 삶을 꿈꾸던 부부는 1797년 10월 혼인하고, 부모 앞에서 동정서약을 한다. 평생 오누이처럼 살 것을 다짐한 것이다. 이순이는 남편이 서약을 어기려는 유혹에 빠질 때마다 기도와 묵상으로 극복하도록 도와줬고, 결국 신유박해 때 차례로 순교한다.
이들이 보여준 삶과 신앙은 `어떠한 유혹도 신앙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한다. 감각적인 것과 쾌락적인 것을 추구하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 신자들에게 유혹이 닥칠 때마다 신앙인임을 자각하고, 예수님께 도움을 청하면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수 있으리라는 `신앙 메시지`를 전해주는 것이다.
충청도 홍주(현 홍성) 출신 순교자 황일광(시몬, 1757~1802)의 삶에서는 우리 시대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과 소외계층 문제를 생각할 수 있다. 천민 출신인 황일광은 생전에 "나의 신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너무나 점잖게 대해 주니, 천당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후세에 하나가 있음이 분명하다"는 말을 남겼다.
당시 천민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하느님을 알게 된 뒤 양반, 중인 할 것 없이 자신을 하느님 자녀로서 동등하게 대해주는 것을 보며 하늘나라가 이 세상에 하나가 있고, 죽어서 갈 하늘나라가 하나 더 있다고 말한 것이다. 천한 신분에도 그를 애덕으로 감쌌던 신앙 선조들 삶은 우리 시대 가난하고 어렵게 사는 이들과 비정규직이라는 차별로 고통받는 이들에게 하느님 사랑을 전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
▲ 강선모 작 `125개의 눈물`, 캔버스에 유채, 259×162㎝,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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