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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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해 · 창간 86주년 기획 - 현대 가톨릭 신학의 흐름] (22) 영적 돌봄 1 : 21세기 의료계에 영성의 회귀 : 전인적 치유와 영적 돌봄

연민 어린 마음·전인적 돌봄이 ‘진정한 치유’의 핵심/ 의·과학 발달 과정서 ‘환자는 결함 있는 기계’ 간주돼/ “총체적 치료·돌봄 필요” 의견 대두, 영적 돌봄 관심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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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21세기 의료계에 새로이 떠오르고 있는 영성과 건강의 관계 설정 문제, 그리고 영적 돌봄 개념에 대하여 3회에 걸쳐 살펴본다. 그 세계적 동향과 흐름을 교육과 연구 및 실무의 차원에서 알아보고자 한다.



수세기동안 의학과 영성은 고통 경감과 치유를 도모하기 위하여 긴밀한 협력을 유지해 왔다.

서구에서 중세 초기는 수도원 의학의 시기로 성직자가 의학을 전담하였고, 종교적인 의식과 기도, 그리고 영성이 치료의 주요 방법이었으며, 19세기까지 그 영향력이 강력하였다.

20세기 초반부터 의학의 전문화와 치료의 과학적 발전은 생명연장의 결과를 이루었지만, 의료계의 문화는 전인적, 서비스 지향에서 멀어져갔다.

의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과학 중심적 실증주의적 사고 안에서 의학의 질병-치료 모델(disease-cure model)은 인간을 대상화하고 ‘부분의 합’이라는 환원론적 관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러한 사유의 틀 안에서 환자는 하나의 결함을 가지는 기계로 간주되었으며, 고통 받는 환자의 살아있는 경험은 의료계의 관심을 받을 수 없었다.

그 결과 환자는 치료에 만족하지 못하고 고통 받았으며, 건강관리전문가들은 자신의 한계와 과중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자신의 일에 점점 덜 만족하게 되었다. 과학기술이 몸의 치료는 하였으나 인간의 고통을 치유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한계에 부딪히면서 1980년대에 들어서며 ‘인간은 부분의 합 그 이상’이며 ‘환경과 상호작용하는 에너지 장’이라는 총체론적 패러다임이 출현하게 되었다.

인간을 총체적으로 보고 치료하고 돌보아야 한다는 새로운 성찰을 통해, 의료계는 그동안 소외되었던 영성적 차원과 영적인 돌봄에 대한 관심을 다시 기울이게 되었다.

국제 의료기관 인증위원회(The 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JCI)에서도 환자에 대한 영적 믿음을 사정(査定)하고 영적 돌봄을 제공하도록 요구하고 있다. 예를 들어, 국제적 병원으로 인증을 받은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같은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또한 많은 문헌에서도 의료에서 영성의 역할에 관해 문제를 제기하고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영성이 환자와 의료인 모두에게 신체적·정신사회적·영적 안녕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가 증가하고 있다.

따라서 다양하게 증가되는 연구와 다학제간 협동 실무에서 통용되는 영성에 관한 정의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의료계의 영성에 대한 제네바 국제회의

올해 2013년 1월 스위스 제네바에서 전 세계 의료시스템에 영성을 통합하기 위한 권장사항을 마련하기 위하여 다양한 학문 분야, 종교 및 문화 등 각계의 국제 지도자들이 모인 역사적인 ‘의료에서의 영성 국제적 합의회의’가 개최되었다.

미국 조지워싱턴대학 영성과 건강 연구소(George Washington Institute of Spirituality and Health, GWISH)와 국제자선연맹(Caritas Internationalis)이 함께 주최한 이 회의에는 20여 개국의 연구자, 교육자, 정책결정자, 의사, 간호사, 사회복지사, 원목자 등 다양한 분야의 대표들 40여 명이 모여 현재의 의료계 현황을 검토하였고, ‘영성’ 개념을 연민적 인간 중심 의료에 통합하여 환자에게 질적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창의적인 방법을 모색하였다.

GWISH의 설립자이자 소장이며 이 회의를 주관한 내과학교수 Puchalski 박사의 초청으로 필자도 이 국제회의에 참석하는 영예를 가졌는데, 영성과 관련하여 영감을 주고받는 참가자들의 지치지 않는 토론 열기는 알프스의 만년설을 모두 녹일 듯하였다.

제네바회의 참석자들은 건강 분야에서 다문화에 적절한 영성의 정의에 합의를 이루었고, 전인적 관점에서 합의된 돌봄의 표준을 제안했으며, 영적 돌봄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국제적·전략적 계획을 수립하기 위해 폭넓은 틀을 개발하였다. 이 결과는 학술지에 발표될 예정이며 앞으로 세계 의료계의 방향을 제시할 생생한 자료가 될 것이다.

국제적으로 합의된 영성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영성은 인간성의 역동적이고 내적인 영역으로 사람이 영성을 통하여 궁극적인 의미와 목적 및 초월을 추구하고, 자신·가족·사회·자연, 그리고 의미있는 또는 성스러운 대상과의 관계를 체험하는 것이다. 영성은 믿음, 가치, 전통 및 관례들을 통하여 표현된다.”

제네바 주재 유엔의 국제카리타스 대표인 비틸로 몬시뇰을 비롯한 모든 참가자들은, 이 영성회의가 종교·가치·문화·신념과 상관없이 모든 환자의 유익을 도모하여 의료의 질을 향상시키고자 선도하는 것에 매우 만족하였으며, 전 세계적으로 의료인을 위한 영성 교육 프로그램과 센터 등의 프로젝트를 고안하는 데 동의하고 한껏 고양되어 본국으로 돌아갔다.

치유의 영적 돌봄: 연민 어린 함께함 (compassionate presence)

의료계에서 영성은 넓은 의미에서 ‘연민 어린 돌봄’(compassionate care)의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연민(compassion)은 라틴어 cum(함께)과 passio(고통)에서 유래된 것으로, 그 의미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empathy)하며 깊은 동정과 슬픔을 함께 느낄 뿐만 아니라, 그 고통을 경감시켜 주고자 하는 강한 갈망을 가지고 치유의 말과 행위로써 구체적으로 응답하는 것이다.

‘연민 어린 함께함’(compassionate presence)을 통한 전인적 치유의 실천 모델을 우리는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루카 10,29-37 참조)에서 잘 배울 수 있다.

사마리아인은 강도들에게 매를 맞고 옷이 벗겨지고 의식을 잃은 채 초죽음이 되어 길에 버려진 어떤 사람을 보고, 가엾은 마음(영적 돌봄)이 들어 다가가 상처를 치료해 주었고(육체적 돌봄), 또 여관으로 데려가 돌보아 주었다(정신·사회적 돌봄). 그가 누구인지 알 길 없는 낯선 이에게 가엾은 마음이 들어 무조건적 사랑과 자비, 연민 어린 돌봄을 베푼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우리는 여기에서 전인적 돌봄과 치유의 핵심이 왜 영적 돌봄이 되는지를 알게 된다.

즉, 그에게 연민 어린 가엾은 마음이 들지 않았다면, 아무런 돌봄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연민 어린 마음과 함께 전인적 돌봄(몸·마음·영혼)을 치유로 완성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별안간 강도들처럼 덮친 질병에 초죽음이 된 사람이 있다. 한 바쁜 의료인이 그에게 가엾은 마음 없이, 보이는 상처에 기계적으로 드레싱만 해주고 곧 나갔다고 하자. 질병의 위협으로 인해 고통 받는 환자의 마음과 영혼은 어떻게 돌봄과 치유를 받을 수 있을까!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는 늘 병자와 고통받는 이들을 가엾이 여기시고 사랑과 연민으로 다가가시어 그들을 전인적으로 치유해 주셨다.




가톨릭신문  2013-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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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장 132절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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