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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성월 기획] 갈매못·서짓골, 이곳에 순교 성인들이 있었네! (4·끝)

“순교자들 흘린 피 진토가 된 거룩한 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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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년(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한 다블뤼 주교, 위앵·오매트르 신부, 황석두, 장주기 다섯 성인 중 황석두는 현재 고향 인근에 있는 괴산 연풍성지에 묻혀 있고 다른 네 성인은 절두산 순교성지에 그 유해가 모셔져 있다. 갈매못에서 처형된 성인들이 어떤 경로를 거쳐 연풍성지와 절두산 순교성지에 이르게 됐는지를 추적하는 일은 성인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이장에 참여한 신자들의 목숨을 건 용덕과 신심을 알아볼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이다.

충청도 공충수영에서 약 20리 떨어진 갈마연, 지금의 갈매못 성지 해변가에서 군문효수형에 처해진 순교자들의 머리는 장깃대에 높이 매달렸다. 3일 후인 1866년 4월 2일 수영의 지시에 따라 비신자들이 장깃대에서 순교자들의 머리를 내려 각각의 시신과 함께 인근 모래사장에 묻었다. 갈매못 순교자들의 첫 번째 무덤으로 임시매장지라고 볼 수 있다.

이 때 비신자들은 프랑스 선교사 3명의 시신을 한 무덤으로, 조선인 2명의 시신을 또 한 무덤으로 만들고 그 위에 잔돌을 쌓아 봉분을 만들었다. 목이 잘려진 부분의 일치를 확인해 순교자들의 신원을 확실히 한 후 시신마다 안가(다블뤼 주교), 민가(위앵 신부), 오가(오매트르 신부), 황가, 장가라고 쓴 명패를 달았다. 1899~1900년 ‘병인 순교자 시복 조사 수속록’에 이와 관련된 증언들이 나온다.

황석두의 시신은 임시매장 직후 조카요 양자인 황기원(안드레아)과 그 아우인 황천일(요한) 등 일가에 의해 홍산 삽티(현 부여군 홍산면 상천2리)에 안장돼 갈매못에는 다블뤼 주교, 위앵·오매트르 신부, 장주기 4명의 시신만이 남게 됐다. 장주기의 아들 장노첨이 다른 곳에 순교자들의 시신을 안장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고 청양 다래골(다락골) 신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동의를 얻지 못했다. 시신 이동에 적지 않은 자금이 필요할 뿐더러 발각될 경우 죽음을 각오해야 했기 때문이다.

장노첨은 다시 남포 서짓골에 사는 이사심(바오로)을 찾아갔고 그의 적극적인 동의를 얻는 데 성공한다. 박해시대 교우촌 사이에 연락체계가 마련돼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리하여 신자들은 1866년 5월 21일 갈매못 임시매장지에서 순교자들의 목과 시신을 일치시키고 염을 한 뒤 10리가량 떨어진 곳(일설에 콩밭)으로 옮겨 안장했다. 이것이 갈매못 순교자들의 두 번째 무덤이며 하나의 봉분을 쌓아 만들었다. 이 무덤은 이후 신자들의 순례지가 됐다.

그러던 중 순교자들의 무덤이 여우에 의해 훼손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첫 번째 이장을 주도했던 이사심이 1866년 6월 직접 무덤 상태를 확인하고 홍산 도앙골(현 부여군 내산면 금지1리)에 살던 김순장(요한)과 두 번째 시신 수습 및 이장을 의논했다. 두 사람은 이장 비용을 신자들에게 추렴하고 이장 장소는 남포 서짓골 이씨 집 뒤편 골짜기 담배밭으로 결정했다. 신자들은 비신자 최가의 배를 삯 내고 역시 비신자인 서성학 형제를 사공으로 고용했다. 이장은 1866년 7월(음력)에 이뤄져 서짓골에 안장되기까지 10~15일이 소요됐다.

갈매못 인근 두 번째 무덤에서 서짓골 세 번째 무덤까지의 이동 경로에 대해 양업교회사연구소 차기진(루카) 소장은 다음과 같이 고증했다.

여수애(현 보령시 오천면 오포리의 여수해) → 가패 → 슬섬(현 보령시 주교면 송학리의 솔섬) → 녹안이뿌리(현 보령시 웅천읍 독산리 독대섬) → 완장내(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 곰재(현 보령시 주산면 동오리) → 서짓골

서짓골의 세 번째 무덤은 1882년 1월까지 15년 6개월 동안 그대로 보존됐고, 그 결과 순교자들의 피와 살, 잔뼈들이 진토가 된 거룩한 땅이 됐다.

이후 순교자들의 유해는 1882년 11월 6일 일본 나가사키 오우라성당 내 조선대목구 대표부로 보내졌다가 1894년 5월 23일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안치됐다. 6년 뒤 1900년 9월 5일에는 명동성당 지하묘역에 옮겨진 후 병인박해 순교자들의 시복식(1968년 10월 6일)을 1년 앞둔 1967년(정확한 일자에 대한 기록이 없음) 절두산 순교성지 성해실로 다시 옮겨져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전교구 하부내포성지 전담 윤종관 신부는 “갈매못 순교자들의 시신 이동에 앞장선 이씨 집안에서 이사심을 비롯해 순교자들이 다수 나와 ‘줄과부’가 생겼고 이완성(요한) 신부(1914~1954), 이우철(시몬) 신부(1915~1984) 등 후손 중에 사제들도 탄생했다”고 말했다.


박지순 기자 (beatles@catimes.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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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3-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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