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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주일에 만난 사람] 광주대교구 흑산본당 사리공소 임송 선교사

두려움이 ''행복''으로 바뀌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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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송 선교사는 "사리공소 생활이 정말 행복해서 이제는 섬 밖으로 나가고 싶지 않다"면서 "앞으로도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겠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지난 3월 3일 밤. 임송(아론, 59) 선교사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인적 없는 시골 외딴 집에서 혼자 잠을 청하기는 처음이었다. 무서웠다. 계속 뒤척거리다가 벌떡 일어나 시간전례(성무일도)를 바치며 `이 밤을 편히 쉬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끝내자 두려움이 사라지고 잠이 쏟아졌다. 그렇게 선교지에서 첫날이 지나갔다.

 임 선교사는 광주대교구 흑산본당 사리공소 최초의 선교사다. 1957년에 공소가 설립됐으니 56년 만이다. 그는 지난해 여름까지 여수필하모닉오케스트라 단장으로 활동했던 음악인이었다. 수많은 관객들의 주목을 받으며 화려한 삶을 살았던 오케스트라 단장이 목포에서 뱃길로 90㎞ 떨어진 섬의 작은 공소 선교사가 된 것이다.

 임 선교사는 "20여 년 전부터 교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는 마음을 갖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가 광주대교구 평생교육원에서 선교사 양성 교육을 받은 후 마음을 정했다"면서 "사리공소에 와서 생각지도 못했던 큰 행복을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9월 오랫동안 꿈꿔온 선교사로 발령을 받았지만 임 선교사는 마냥 기뻐할 수 없었다.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임지가 흑산도라는 말을 듣고 `정말 그 섬에 가야 하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드러내놓고 말을 하지는 못했지만 많은 갈등을 했다.

 육지에 있는 선교지에서 활동하면서 휴일에는 음악 활동을 할 계획이었지만, 흑산도로 들어가게 되면 모든 것을 다 정리해야 했다. 여수에서 살고 있는 아내, 고등학생 딸과도 자주 만날 수 없었다. 지금은 "정말 훌륭한 일을 하고 있다"고 격려해 주는 아내도 당시에는 "어떻게 그런 결정을 했느냐"며 서운해 했다.

 마음을 완전히 정리하지 못한 상태에서 지난해 9월 흑산도에 들어왔다. 흑산본당에서 지내며 선교를 준비하면서도 `빠져나갈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신기하게도 대림시기를 지내고 예수성탄대축일을 준비하면서 갈등은 눈 녹듯 사라졌다. `기쁜 마음으로 이 길을 가야겠다`는 결심이 섰다.

 7개월여 준비를 거쳐 마침내 3월 사리공소에서 활동을 시작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는 임 선교사는 마치 웅변을 하듯 큰 소리로 시간전례를 바치며 하루를 시작한다. 기도를 마치면 오르간을 치며 화답송을 노래한다. 임 선교사는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들 때까지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고 있다"며 활짝 웃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곳에 오기 전에는 의무적으로 시간전례를 바치면서도 지루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기도를 바칠 때마다 감격스러워요. `이렇게 기도가 짧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요. 말씀이 마음속에 그대로 새겨지는 느낌이에요. 주변에 집이 없으니 크게 기도를 해도 뭐라고 하는 사람도 없어요. 혼자 살며 하느님과 함께하는 게 이렇게 행복할 줄은 몰랐어요."

 처음 공소예절을 했을 때 참례한 신자는 고작 4명이었다. 임 선교사는 매일같이 깔끔하게 다린 하얀 와이셔츠를 입고 주민들 집을 방문해 어르신들 손을 잡고 기도를 바쳤다. 가정방문을 마칠 때면 항상 "이 집에 복을 내려주소서"하고 기도했다. 주민들은 처음 보는 선교사를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부지런히 주민들을 만나며 얼굴을 익히자 공소예절에 참례하는 신자가 하나둘씩 늘어갔다. 지금은 평균연령 78세 어르신 11명이 매주 함께하고 있다. 예비신자도 2명이나 된다.

 "교리를 잘 모르는 어르신도 계시고, 심지어는 주모경을 외우지 못하는 분도 계세요. 하지만 하느님께 대한 믿음은 어떤 신자들보다 강하시죠. 낙천적인 마음을 갖고 늘 감사하며 사시는 어르신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어요. 그분들을 보면서 하느님의 현존을 느껴요. 매일 즐겁고 행복해요."

 그는 "인생을 마무리하며 봉사한다는 마음으로 사리공소에 왔는데 오히려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있다"면서 "예전 생활이 생각나지 않을 만큼 이곳 생활이 익숙하다"고 말했다.

 임 선교사는 1801년 신유박해 때 배교한 후 흑산도로 유배를 온 정약전(1758~1816) 연구에도 각별한 관심을 갖고 있다. 1807년 흑산도로 건너와 사리에서 유배생활을 한 정약전은 신분을 따지지 않고 모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고 전해진다.

 "정약전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는데 마침 그분이 지냈던 마을에서 제가 살게 됐어요. 열심히 선교사 활동을 하면서 정약전 삶도 꾸준히 연구할 계획이에요. 또 하나 꿈이 있다면 아직 공소가 없는 작은 섬에 공소를 설립해 구석구석까지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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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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