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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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땅에 평화를] 서울역 노숙인들, 어디로?

쫓아낼 것 아니라 맞춤형 복지로 사회가 품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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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다는 이유로 노숙자라는 이유로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은 반인권적 처사"
 

 
▲ 노숙인들이 강제퇴거 조치가 내려진 서울역사 앞에서 둘러앉아 술을 마시고 있다.
사회복지 전문가들은 무료급식이나 쉼터 제공 같은 일시적 방법으로는 노숙인 문제를 풀 수 없다고 말한다.
 

코레일 22일부터 노숙인들 강제 퇴거 조치 결정
무료급식 같은 임시 방편 아닌 근본적으로 접근
노숙인, 질서 이탈의 문제 아니라 빈곤의 문제
사회로 복귀하도록 맞춤형 복지 서비스 제공해야

 도심의 비둘기와 닮았다. 비둘기는 행인들의 발걸음과 인기척에 신경쓰지 않고 이리저리 날개를 퍼덕이며 먹잇감을 구하러 다닌다. 이들도 사람들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쓰레기통에 몸을 반쯤 접어 걸치고 뭔가를 찾는다. 그 속에서 반쯤 탄 담배꽁초도 건지고, 때로는 먹을거리도 건져 올린다. 보행자들은 이들과 마주치면 멀찌감치 돌아서 간다. 지저분한 행색과 지독한 냄새, 거칠고 무례한 행동 등 모든 게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우리 사회의 노숙인 이야기다.
 
#노숙인 바라보는 시각 바꿔야

 대전에서 순대볶음 노점상을 하다 실패해 서울로 올라온 박아무개(37)씨는 서울역 대합실에서 먹고 잔다. 이따금 건축공사장에 가서 하루 이틀 허드렛일을 해주고 돈을 벌기도 했는데, 요즘은 건축경기가 없어 일자리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노숙생활 10년 째, 몸과 마음은 지칠대로 지쳐있다.

 박씨는 "시민들에게 행패를 부리는 노숙자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며 "서울역에서 노숙자들 모두 나가라고 하던데, 여기서 먹고 자고 일하러 나가는 사람들이 당장 어디로 가느냐"고 말했다.

 코레일이 이달 22일부터 서울역 노숙인들을 강제퇴거 조치하기로 결정하자 노숙인들과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코레일은 노숙인들의 구걸행위와 소란 등으로 끊이지 않는 민원을 해소하고 서울역 이미지를 제고하기 위해 300여 명에 달하는 노숙인을 역사 밖으로 내보내기로 했다.

 20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공동대책위원회는 "가난하다는 이유로, 노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오갈데 없는 사람을 쫓아내는 것은 반인권적 처사"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서울역 노숙인 강제퇴거 철회ㆍ공공역사 홈리스지원 대책 마련을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조직해 강제퇴거 철회를 촉구하고 있다.

 여성 노숙인 쉼터인 수선화의 집 김기혜(젬마) 원장은 "전 세계가 노숙인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지만 서울역사처럼 몇백 명이 모여있는 곳도 드물다"며 "서울역에서 강제퇴거시키면 이들은 다른 곳으로 몰릴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울역에서 2년간 노숙생활하다 자립한 김아무개(36)씨는 "노숙인을 보기 싫다는 이유로 쓰레기처럼 수거하는 것"이라며 "돈 벌 능력이 없어서 내 몸 하나 쉴 곳 없는 사람들을 어디로 가라는 거냐?"고 물었다.

 서울역은 노숙인 사이에서는 `정보센터`로 통한다. 쪽방촌 등 다양한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무료급식소가 많아 적은 비용으로도 노숙생활이 가능하다. 지방에서 올라온 무일푼의 노숙인들은 대부분 서울역사로 몰린다.

 서울시는 서울역에서 강제퇴거당하는 노숙인들을 위해 임시주거지원 100호, 일자리 200명 지원, 상담인력 증원 등의 대책을 내놨다. 그러나 노숙인들과 시민단체들은 "그건 대책이 아니라 서울시가 노숙인들 동사(凍死)를 막기 위해 겨울마다 시행하고 있는 것들"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홈리스행동 집행위원장 이동현(36)씨는 "노숙인은 질서 이탈의 문제가 아니라 빈곤의 문제이므로 사회복지 차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해결할 수 없다"면서 "공공역사에 위기개입센터(가칭)와 같은 긴급구호센터를 만들어 사회복지사를 배치하고 노숙인들에게 적절한 도움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어 그는 "미국이나 프랑스는 터미널과 공공역사에 상담소를 설치해 노숙인을 위한 다양한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고 덧붙였다.
 

# 단속·통제가 아닌 지속적 관심과 지원을

 IMF 외환위기 극복 이후 관심권 밖으로 밀려나 있던 노숙인 문제가 다시 사회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당장 코레일 측과 노숙인들 간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IMF 외환위기 때에 비하면 정도는 덜 하지만 노숙인 문제는 여전히 사회적 관심과 대처가 필요한 현안"이라고 말한다.

 보건복지부는 전국 노숙인 수를 4300여 명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1만여 명에 달한다는 게 관계자들 말이다. 극심한 빈부격차는 말할 것도 없고, 구조조정이나 사업 실패로 한 번 쓰러지면 다시 일어서기 힘든 사회구조에서는 노숙인이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IMF 외환위기 때처럼 정부와 민간단체는 임시보호소 설치, 무료급식 등의 응급구호 성격의 대처 외에 달리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가톨릭교회도 IMF 외환위기 당시 실직자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자 가톨릭실직노숙자복지협의회를 조직해 다양한 복지사업을 벌였지만 지금은 뜸한 편이다.

 3년 전 무료급식사업을 중단하고 쪽방촌을 운영하고 있는 사랑의 나눔회 박대성(바르나바) 원장은 "초창기에는 노숙인들에게 무료급식이 필요했지만 어느새 하루 열 끼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무료급식소가 늘어났다"고 우려했다. 따라서 "이들을 노숙생활에서 구제하려면 다른 방식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가톨릭 사회복지 관계자들은 "이제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노숙인 복지사업에 접근해야 한다"고 말한다. 일시적인 무료급식이나 일방적인 쉼터 수용 차원에서 벗어나 그들이 사회로 복귀할 수 있도록 맞춤형 복지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시설 `마더데레사의 집` 시설장 김옥봉(사랑의선교수사회) 수사는 "노숙인들은 마음의 상처가 많아 쉼터에서 갇혀 지내는 것을 힘들어하고, 일자리를 구해줘도 일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며 보다 세심한 맞춤형 서비스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울가톨릭행려인복지협의회 하태욱(미카엘) 회장은 "거리에서 생활하는 노숙인의 90는 만성질병과 정신질환에 시달리고 있다"며 "노숙인을 병원에 입원시킬 경우 정신과 치료도 받을 수 있도록 연계 프로그램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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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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