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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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쉼터] 초보 순례자 이지연 기자,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다

질퍽한 숲길 걷기에 지쳤지만. 자연의 신비로움에 흠뻑 빠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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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9일 오전 5시30분. 동이 트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간단히 세안을 하고 짐을 꾸렸다. 최대한 몸을 가볍게 했다. 카미노 데 산티아고(산티아고로 향하는 길)의 순례자가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침 식사 후 꼬박 한 시간 동안 버스를 타고 출발지로 달려갔다. 오전 9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향해 첫발을 뗐다. 단 세 시간 동안이지만 ‘길 위에서 자신과 만나는 여정’을 시작했다.



#카미노를 걷다

출발지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부터 약 50km 떨어진 멜리데(Melide)다. 깜깜했던 하늘이 숙소에서 멜리데까지 이동하는 동안 점차 밝아졌지만 해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동장군의 기세는 스페인에서도 꺾일 줄 몰랐다. 단단히 준비하고 나왔지만 축축이 젖은 땅의 냉기가 발끝으로 전해졌다. 저 멀리 순례자가 보였다. 무거운 백팩을 메고 지팡이에 의존해 걸어가는 모습을 보니 이만한 추위에도 몸을 웅크리는 초보 순례자는 그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말이라도 걸어볼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발걸음을 재촉했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카미노를 찾아온 목적에 매진할 수밖에 없었다.

시골길은 곧바로 초원길로 변해 있었다. 초원에는 하얀 서리가 내려앉아 있었다. 순례자 대부분은 봄과 가을에 찾아온다. 변덕스러운 날씨와 큰 기온차로 겨울에는 순례자가 많지 않다. 앞서 지나간 순례자 외에 다른 순례자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한겨울인 1월 초, 순례자가 적은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초원길에 이어 유칼립투스와 소나무가 우거진 숲길이 나왔다. 계속 같은 모습의 길이 이어졌다. 더욱 길에 집중하려고 노력했다. 한 발, 한 발 생각을 담아 걸었다. 한국에서의 일들이 수없이 생각났다. 후회와 걱정 등 다양한 감정이 마음속에서 일어났다. 분심이 들었다. 삶의 무게가 느껴질 때 이 길을 걸으면 좋다는 가이드의 설명에 충실하고자 했지만 짧은 시간동안 길 위에서 나를 찾는다는 건 무리한 욕심이었다. 목표를 바꿨다. 전 세계 각지에서 찾아온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를 찾아오는 이유를 찾고 싶었다.


 
▲ 멜리데에서 시작한 순례길은 시골길, 초원길, 숲길로 이어졌다.
평범해 보이는 길 속에서 만나는 자연의 신비로움이 많은 순례자들로 하여금 이곳을 찾아오게 만든다는 결론을 얻었다.
 
 
#태양의 나라에서 태양을 만나다

천천히 걷다보니 일행과 떨어졌다. 음산한 겨울길을 혼자 걷는 게 조금 무섭게도 느껴졌다. 소리가 들릴 때마다 뒤를 돌아봤다. 등 뒤에서는 어느덧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태양의 나라, 스페인에서 태양을 만났다. 높은 건물도 산도 없었다. 나무 사이로 떠오른 태양이 오롯이 붉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신비로웠다. 그 순간 무릎을 쳤다. 긴 세월동안 수많은 순례자들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찾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서리가 내린 초원길과 질퍽한 숲길 걷기에 지쳤던 마음에도 태양이 떠올랐다.

기분이 한결 상쾌해졌다. 목적지까지 열심히 걸었다. 조개가 새겨진 표지석이 안내를 도왔다. 추위도 사라졌다. 매일같이 비가 온다는 산티아고 지역의 날씨가 이날만큼은 맑게 개었다. 두터운 패딩점퍼를 벗어 허리춤에 묶었다. 땀이 나기 시작했다. 오래 걸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했다. 목적지에 다다라 작은 카페에서 에스프레소 한 잔을 마셨다. 짧은 여정이었지만 작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 일행과 떨어졌지만 걱정은 되지 않았다.
카미노 곳곳에 세워진 표지석이 초보 순례자를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안내했다.
 

 
▲ 을씨년스러운 겨울의 카미노.
서리가 내린 카미노의 냉기가 발끝에 와 닿았다.
 
 
■ ‘별들의 들판’,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는 예수의 열 두제자 중 한 사람인 성 야고보의 무덤이 발견된 곳이다. 산티아고는 성 야고보의 스페인어 이름이다. 813년 뻴라요라는 목동이 하늘의 별을 보고 들판에 갔다가 성 야고보의 유골을 발견해,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별들의 들판’이라고 부른다. 지금까지도 성 야고보의 유골함이 대성당 지하에 안치돼 있다.

교황 알렉산더 3세가 1189년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를 성스러운 도시로 선포해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유럽 3대 순례지로 꼽히게 됐다. 이후 15세기까지 이곳을 향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종교개혁 등으로 잊혔다가 1982년 교황



가톨릭신문  2011-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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