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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상 시인 장례미사] 김수환 추기경 강론 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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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오랜 병상생활 끝에 그저께 우리 곁을 떠나신 시인 평소에 존경하고 사랑하던 구상 선생님과 이승에서 마지막 하직 인사를 나누고 고인을 위해 주님께서 영원한 안식을 주시도록 비는 영결미사를 바치고 있습니다.

 구상 선생님은 잘 아시는 바대로 우리나라 현대 시단을 대표하시고 문단에서도 중진이시면서 시나 글로써 우리 사회를 끊임없이 깨우쳐 주신 정신적 원로이십니다. 그분은 참으로 어두움 속에 별과 같이 맑게 아름답게 빛을 발휘하시며 우리 마음과 사회를 밝히시던 분이셨습니다.

 구상 선생은 명실공히 가톨릭 시인이십니다. 폐쇄적 의미의 한 종파에 속하는 뜻의 가톨릭 시인이 아니고 가톨릭이라는 말의 뜻 그대로 보편적이요 온 세상 모든이에게 열려있고 모든 이를 일체의 차별을 초월하여 감싸는 그렇게 넓은 하느님의 마음을 닮고 그처럼 크고 넓고 깊은 믿음과 사랑의 삶을 사신 시인이십니다.
 시인 구상에게 하느님은 분명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시 말씀의 실상 에서 영혼의 눈에 끼었던 무명의 백태가 벗겨지면 나를 에워싼 만유일체가 말씀이다 고 하셨습니다. 만유일체가 하느님의 현존을 증거하고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고 있다는 뜻이겠습니다. 이 하느님 우리의 존재와 생명의 근원이시요 우리가 찾는 모든 것 진리 정의 사랑이시며 우리 삶의 목적이십니다.
 이는 구상이 당신 스스로를 타이르시며 쓰신 시 요한에게 에서 잘 볼 수 있습니다. 너 아둔한 친구 요한아 로 시작되는 이 시에서 시인은 네가 설날 아침에 햇발같은 눈부신 시를 써서 온 세상에 빛난다 해도 너의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느냐? 너 아둔한 친구 요한아 가령 네가 미스월드를 아내로 삼고…제때 산해진미로 구복(口腹)을 채운다 해도 너의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느냐? 너 아둔한 친구 요한아! 가령 네가 남보다 뛰어난 건강을 가졌거나 찬만인을 누르는 권세를 가졌거나 화성을 나르는 재주를 지녔다 해도 너의 안에 온전한 기쁨이 없다는 것을 아직도 깨우치지 못하느냐? 고 하시며 네가 네 안에 참된 기쁨을 누리자면 너의 오늘날 삶의 모든 것이 신비의 샘임을 깨달아 그 과분함을 감사히 여길 때 이루어지리니 라고 단언하셨습니다.

 이처럼 구상은 하느님을 떠나서 그분의 현존과 그분의 신비를 떠나서는 세상의 모든 권세와 부귀를 누린다해도 소용이 없고 참으로 인간다운 인간으로 살 수 없다는 것을 깊이깊이 깨닫고 계셨습니다.
 구상 선생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있는 취약한 인간성이 그대로 있었습니다. 회의도 있었고 고뇌도 있었고 방황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분에게는 언제나 돌아갈 집이 있었습니다. 복음에 나오는 탕자와 같이 돌아가기만 하면 모든 것을 용서하고 받아주실 아버지 하느님의 사랑의 집이 있었습니다. 구상 선생은 이 믿음을 모태에서부터 받으셨고 이 믿음 속에 사셨고 이 믿음 속에 마지막 병상에 고초를 다 받으시고 제 영혼을 당신 손에 맡기나이다 하시며 당신의 삶과 죽음 일체를 하느님 손에 바치셨습니다.
 믿는 이에게는 죽음이 죽음이 아니고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상 요한은 그리스도 안에 그분과 함께 누리는 부활과 영생의 이 믿음을 깊이 간직하며 사신 분이십니다. 당신의 시 부활령 (復活嶺)에서 우리는 이런 믿음을 분명하게 볼 수 있습니다. 주님 구상 요한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으로 저를 비추어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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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4-0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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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9장 132절
저를 돌아보시어 자비를 베푸소서, 당신 이름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주신 권리에 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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