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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음]서강대 설립자 고 게페르트 신부 영결미사서 김수환추기경 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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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일본 도쿄에서 향년 98세로 별세한 예수회의 테오도르 게페르트(Theodore Ge

ert) 신부는 서강대 설립자이면서도 김수환 추기경 등 일본에서 수학한 한국 성직자들의 가슴 속에는 영원히 잊지 못할 영적 스승으로 남아 있다.
김수환 추기경은 19일 서강대 이냐시오관 성당에서 영결미사를 주례하면서 게페르트 신부가 태평양전쟁 말기에 자신 때문에 눈물을 흘린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일본 상지대 유학 중 학병징집 영장을 받은 김 추기경은 축복을 청하기 위해 게페르트 교수신부를 찾아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모았다. 그때 김 추기경은 머리에 얹은 고인의 손이 심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우는 소리가 들렸다. 고인은 사제의 길을 걷기 위해 현해탄을 건너 온 제자가 일본 제국주의의 전쟁터에 끌려가는 참담한 현실을 지켜봐야 하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한 것이다.
김 추기경은 “어느날인가 신부님이 방으로 불러 가보았더니 ‘기회가 되면 한국에 가서 일하고 싶다’는 말씀을 하셨다”며 “식민통치 시절이라 선교사들조차도 관심이 덜했던 한국을 극진히 사랑하고 계신 그 분이 그렇게 고마울 수 없었다”고 말했다.

고인을 ‘영적 아버지’라고 부른 김 추기경은 “고인은 과묵하고 중후한 인상이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면 모성애에 가까운 자애를 느낀다”며 “지난 4월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도 한국과 한국교회 그리고 한국의 제자들을 위해 늘 기도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회고했다.

강우일 주교는 조사에서 “봉사와 기도의 모범을 보여준 스승”이라고 말했다.
“얼마 전 일본 방문 길에 찾아 뵈었을 때 신부님은 휠체어를 타신 채 어떤 복사물이 놓인 책상 앞에서 졸고 계셨다.

무엇을 보고 계시느냐고 여쭸더니 ‘요즘 나이가 들어서인지 묵상하기가 힘들어 다른 사람이 쓴 묵상집을 읽는다’고 하셨다. 혼신의 힘을 다해 수도자의 길을 가시는 모습을 보면서 머리를 조아렸다.”
1904년 독일에서 태어나 1923년 예수회에 입회한 고인은 아시아 진출을 위해 베를린 동방신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우고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직후 일본 상지대 교수로 부임했다.

서강대를 설립하느라 1954년부터 61년까지 한국에 머문 것을 제외하고는 줄곧 일본에서 대학과 수도회를 위해 일했다.

서강대를 설립할 때는 이승만 대통령이 대학 설립에 비협조적인 데다 부지 구입시 한국의 부동산 뒷거래 관행 때문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대학설립 비용도 대부분 고인이 독일 예수회 등지에서 끌어왔다. 60년 학교 문을 열고 초대 이사장을 맡아 살림을 꾸려가면서도 강단에 서서 학생들에게 독일어를 가르쳤다. 성서에서 뽑은 교훈 “진리에 순종하라”도 그가 정한 것이다.


류장선 총장신부는 “2년 후 고인의 정신과 업적을 기리는 100주년 기념사업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영결미사에는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바티스타 모란디니 대주교 윤공희 대주교 정진석 대주교 이한택 주교 염수정 주교 등 고위 성직자와 예수회 회원과 서강대 동문들이 참례했다.

고인의 유해는 교내 도서관 옆 로욜라 동상 밑에 봉안됐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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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2-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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