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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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 선종 특집] 이 시대의 어둠을 밝힌 ''등불''

장익 주교가 말하는 추기경 김수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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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ㆍ계층 초월해 모든 국민이 존경한 큰 어른
양심ㆍ하느님 정의에 기초한 세상 속 교회 지향
자신의 부족함 통감하며 포용력과 인내력 발휘


 
▲ 김수환 추기경이 1989년 제44차 세계성체대회가 끝난 후 교황청을 방문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를 알현하고 있다. 오른쪽은 장익 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
 


    김수환 추기경이 서울대교구장좌에 착좌(1968년)했을 때 교구 사정은 말이 아니었다.

 수원교구장 윤공희 주교가 수원과 서울을 오가며 임시로 교구를 맡고 있었던 데다 부채가 많고, 사제들이 분열되는 등 복잡하게 얽힌 문제가 많았다. 게다가 김 추기경은 서울이 낯설고 서울대교구 수장(首將)이라는 심리적 부담에 눌려 한동안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때 그의 적응을 도와준 사람이 비서 장익 신부(현 춘천교구장 주교)다.

 장 주교는 "서울에 정 붙이시라고 남대문시장에 모시고 가서 싸구려 점퍼 하나 사드리고 영화를 보고 들어온 적도 있다"며 "하지만 추기경님 얼굴이 알려져 영화 구경은 몇 번 다니다 그만뒀다"고 회고했다. 장 주교는 비서 시절부터 추기경과 깊은 인연을 맺어왔다.

# 상대를 단죄하거나 배척하지 않아

 장 주교는 "추기경님은 왜 그렇게 하셨을까?"라는 화두를 던지며 그의 삶을 조명했다.

 "추기경님은 종교인으로서 왜 정치ㆍ경제ㆍ사회 현안에 대해 발언하셨을까요? 정치인도 아니고 경제인도 아닌데 말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종파와 계층을 초월해 모든 국민이 그분 말씀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는 점입니다. 어느 누구도 그분을 배척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수십만 군중 앞에서 말씀을 하셔도 사람들은 이상하리만치 그분을 가깝게 느꼈습니다. 이미지 관리를 잘하셔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닙니다."

 장 주교는 "추기경님은 내면의 진실성과 인간에 대한 진정한 관심으로 시대적 발언을 하셨으며, 국민들이 그 점을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모두 공감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어느 한 쪽에 서서 상대를 단죄하거나 배척하는 독선이 없었다"며 "이는 분열과 대립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김 추기경은 `세상 속 교회`를 지향했다. 이 때문에 노동자들과 도시빈민, 민주화운동 시위대, 정치적 양심세력 속에서 이루 말할 수 없는 고뇌의 밤을 보내야 했다. 군사독재 시절에는 `정치 주교` `좌파`라는 비난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심과 하느님 정의에 기초한 발언을 멈추지 않았다.

 장 주교는 "독일 유학시절에 전공한 `그리스도 사회학`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 정신이 그분을 세상으로 내보냈다"고 분석했다.

 "당시 유럽은 기성세대의 권위와 질서에 저항하는 젊은이들 물결과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몰고온 변화와 쇄신 바람이 거세게 일고 있었습니다. 추기경님은 공의회 문헌 가운데 특히 「사목헌장」이 제시한 교회관에 깊은 영향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안정적으로 변화돼야지 변혁의 물결에 휩쓸리면 안 된다`는 생각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장 주교는 추기경의 여유와 인내력에 대해서도 높이 평가했다.

 "그분은 무엇에 노여워하시는 법이 없었습니다. 마음이 아파도 받아들이고 말없이 기다리셨습니다. 이 포용력은 자신의 부족함을 통절하게 느끼신 데서 나온 힘입니다. 추기경님은 한 인간으로서 또 고위 성직자로서 제대로 살지 못하는 데 대한 한계를 여러 번 토로하셨습니다. 일종의 자책감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여유가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늘 부족한 사람, 그래서 자신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이라는 말은 하느님을 체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장 주교는 김 추기경이 1969년 추기경 임명 소식을 처음 들을 때 바로 옆에 있었다. 신학교 증축기금을 구하러 함께 외국에 나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장 주교는 "추기경님은 그때 `틀림없이 뭐가 잘못된 거야. 이걸 어떡하나, 이걸 어떡하나…`라는 말씀만 되풀이하셨다"며 "그분은 한국의 첫 추기경이란 영예는 자신이 아니라 한국교회와 사회를 위한 것임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고 말했다.

# 길을 찾는 고독한 구도자

 장 주교는 곁에서 지켜본 추기경의 외로운 모습도 떠올렸다.

 "비행기 안에서 극도로 피곤한 상태였는데도 승무원들이 싸인을 요청하자 웃는 얼굴로 해주시더라고요. 어떤 상황이건 사람들이 같이 사진을 찍자고 하면 항상 웃는 얼굴로 응하셨어요."

 김 추기경은 장 주교에게 "내 별명이 뭔지 알아?"라고 물은 적이 있다. 장 주교가 대답을 못하자 "소품이야, 무대 소품이야"라며 웃었다. 어딜가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진촬영에 응해야하는 피곤함을 익살스럽게 드러낸 농담이다.

 이어 "그럼 주교는 뭔지 알아? 주교는 쓰레기통이야"라고 자문자답했다. 교회 안팎에서 시도 때도 없이 골치 아프거나 처치 곤란한 일을 갖고 찾아오는데 대한 고충을 우회적으로 털어놓은 것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결정을 내리기 힘든 일이 생기면 "이거 큰 일 났네. 교황님한테 가서 물어봐야지. 아차! 내가 교황이지. 그럼 어쩌나?"라는 농담을 자주 했다고 한다.

 장 주교는 "추기경님의 외로운 모습은 봤지만 심심해하는 것은 한 번도 뵌 적이 없다"며 "충분히 고독할 수 있었고, 고독이 무엇인지 아는 분이셨다"고 말했다.

 "추기경님은 신앙을 확신하는 형이 아닙니다. 그것에 대해 묻고 길을 찾아나가는 구도자형에 가깝습니다. 사람들에게 확신에 찬 어조로 들렸을지 몰라도 내면에서는 끊임없이 길을 찾고 계셨습니다. 한마디로 `길을 찾는 삶`이었습니다."

 장 주교는 "추기경님은 어두운 우리 시대의 등불이었다"며 고인을 위한 기도를 부탁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가톨릭평화신문  2009-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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