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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16. 꼬미여장군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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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으로 마을이 변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할 것인가? 속 살림살이는 쉽게 알 수 없으니 우선 시각적인 변화를 시도하자. 마을 회의에서 누군가가 지역 간 경계표나 이정표 구실을 하는 장승이 있으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마을 뒷산에 100년가량 된 소나무가 몇 해 전에 베어진 것이 있다고 했다. 이것으로 장승을 만들자. 3m 50㎝ 장신의 소나무 두 개를 옮기려면 굴착기가 필요하다. 뒷집 아지매 둘째 아들이 굴착기 주인이다. 서각과 세밀화를 하는 분, 전직이 목수였던 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아도 뭐라도 척척 해내는 분 등 마을 사람들이 희망이다. 우리의 꿈을 우리 손으로 실현해 낼 수 있음을 실감하는 시간이다.

마을 예술인 배철섭씨는 평생 처음으로 장승 작업을 한다고 했다. 선뜻 장승을 만들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경험이 있는 줄 알았다. 서각도 그림도 누구에게 전문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라 스스로 익힌 실력이라고 한다. 출판되지 않은 자작시들도 많이 가지고 있다. 이런 모습을 두고 천부적인 소질을 지녔다고 하는 것이리라. 마을 이장도 10여 년간 한 경험이 있어서 행정적인 차원에서도 자문 역할을 많이 한다. 마을의 귀한 인재이다.

5월부터 시작해서 한여름 내내 장신(長身) 소나무 장승 작업이 계속되었다. 대패질을 돕는 분, 사포질을 돕는 분, 때로 간식을 준비해 주는 분, 지나다니며 간간이 훈수를 두는 분, 이래저래 자기경험을 나누는 분, 결코 쉽지 않은 지난한 시간이 흘러갔다. 야외 천막 안 따갑게 내리쬐는 땡볕을 견뎌내며 장승은 하나하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눈, 코, 입, 귀가 달리고, 송진 덩어리인 관솔로 가체를 조각하고, 어여쁜 족두리와 비녀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인자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미소 지으며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어서 오십시오” 반갑게 환영하는 모습이다.

아뿔싸, 장승 작업을 거의 마무리했는데, 나무 안에서 살살 구멍을 파고 있는 존재가 있음을. 관솔 작업을 하면서 소나무 속에 살고 있는 벌레를 몇 차례 본 적이 있다. 온몸은 말랑말랑하고 아이보리색으로 머리가 크고 큰 집게가 두 개 나 있다. 이 집게로 나무를 갉아 먹고 있음을 당장 알 수 있다. 아주 연약한 몸으로 그 딱딱한 나무 안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지만, 벌레들이 파놓은 나뭇가루를 보면 그들이 살고 있음을 바로 알 수 있다. 장승 작가는 몇 차례 세밀한 방충 작업을 했다. 살고자 하는 벌레와 그를 잡고자 하는 사람과의 대결이다. 작가의 마음은 작품이 오랫동안 보존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우선이다.

마지막 관문이 다가왔다. 장승에 새길 말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 장승이니 기존 장승의 의미 그대로를 살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으로 합시다. 아닙니다. 그것은 지나간 풍습을 재현하는 것밖에 되지 않으니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로 마을을 찾는 이들에게 환영인사로 합시다. 아닙니다. 그것보다 우리 마을의 특색을 살려 치산은 한때 행정적 명칭이었으므로 남성을 대표하고, 이 마을에서 시집간 분들은 꼬미댁이니까 “치산대장군, 꼬미여장군”으로 합시다.

이장님은 마을 주민들에게 표결에 부쳤다. “천하대장군, 지하여장군”이 우세였다. 노인회장님은 지금 이 시대에 장승을 세우는 의미는 마을의 특징을 살려서 마을을 새롭게 하자는 의미이니 “치산대장군, 꼬미여장군”이 우리 동네의 이름도 알리고, 마을을 빛나게 하고, 미래적이라고 말씀하셨다. 최종적으로는 어르신의 말씀에 따르기로 했다. 꼬미 마을이 우리의 자랑이듯, 장승 또한 마을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꼬미 마을 하느님 백성들의 소식도 자랑할 날을 기다린다. “여러분이 우리의 자랑거리이듯 우리도 여러분의 자랑거리가 될 것입니다.”(2코린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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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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