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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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17. 복숭아꽃/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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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고향의 봄에 제일 먼저 등장하는 꽃이 복숭아꽃이다. 그 옛날 소먹이러 가던 둥근산 살짝골 평지에 인적이 드물자 누군가가 씨를 뿌린 듯이 산복숭아 군락지가 생겼다. 노인회장님께서 마을 뒷산 등산로를 만들어 놓았다고 하셔서 동행하다가 발견한 것이다. 때마침 복숭아꽃이 한창 피어 있어서 눈에 띄었다.

‘아하, 마을 앞 500m가 복숭아꽃길이 되면 어떨까?’ 몇 사람에게 물어보니 좋다고 했다. 생태 지역을 이동한 꽃나무보다 지역 생태에서 자란 나무들과 여기저기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사는 삶이 뜻깊지 않을까? 복숭아꽃과 더불어 사는 우리 마을은 ‘고향의 봄’ 전원 마을이 되리라. 상상만 해도 마음이 봄놀고 기뻐진다.

지난해 3월 어느 날, 노인회장님께서 복숭아나무를 산 아래로 운반해 줄 수 있겠냐고 하셨다. 복숭아꽃길 이야기를 나눈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 몸으로 실천하신 것이다. 가슴이 뭉클했다. 서른 그루를 캐 놓으셨다고 했다. 길이 없는 산길을 따라 올라가니 나무뿌리와 흙을 비닐로 꽁꽁 묶어 두어 운반하기에 좋게 해두셨다. 팔순이 훨씬 넘은 어르신이 산길을 오르기도 힘드실 텐데,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하셨을까? 깜짝 놀랐다. 평생 마을 일을 해 오신 솔선수범으로, 하늘의 기운으로 땅심으로 논밭을 일구어 온 생명의 일군, 농부의 힘을 발휘하셨구나 싶었다.

마군산 입구길이 복숭아꽃잎으로 가득 찰 생각을 하니 마음은 벌써 꽃구름 속을 거닌다. 산모퉁이를 돌면 마을이 보인다. 자전거 타고 중학교 다니던 시절, 어둑해지면 제일 무서운 곳이 마군산 모퉁이 돌 때이다. 지금은 모퉁이 아래쪽도 위쪽도 인가가 생겼지만, 그 당시에는 산에서 짐승이 나타날까 봐, 혹시 누군가 나타날까 봐 마음 졸이며 올라가는 언덕길이다. 마군산 언덕배기에 도착하면 죽을 힘을 다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다. 힘이 모자라서 자전거에서 내리면 머리끝은 서고, 손은 벌벌 떨면서 자전거를 끌고 간다. 불빛 하나 없는 칠흑 같은 밤에 산모퉁이를 도는 생각만 해도 아찔해진다.

그 길이 꽃길이 된다니 가슴 떨리는 일이다. 몇 주가 지난 즈음에 동네 노인회 총무님과 청년들이 식목을 했다. 꽤 많은 나무였지만, 300m가량 심어졌다. 그 길을 지날 때마다 “하나, 둘, 셋, 넷… 서른” 나무 숫자도 세어보고, 복숭아 꽃그늘도 그려보고, 꽃비도 그려보고, 고향의 봄 노래도 신 나게 불러보면서 이 길은 벌써, “나의 살던 고향 복숭아꽃길”이 되었다.

봄이 되어 새잎이 나는지, 안 나는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몇 나무 외에 대부분 잎을 틔웠다. “아, 살았구나.” 한여름 땡볕과 가뭄이 시작되었다. 생명수, 물을 주어야 하는데, 여력이 없었다. 잎이 났으니 살겠거니 했는데, 또 다른 웬수(?)가 등장했다. 칡넝쿨이다.

길가에 진을 치기 시작한 넝쿨은 전봇대도 타고 올라가고, 복숭아나무를 휘휘 감아 숨을 못 쉬게 하는 것이다. 한차례 동네 청년들이 나무 주변 칡넝쿨을 정리했다. 가뭄에 뿌리가 버티기도 힘들었는데, 숨도 못 쉬게 하니 서서히 말라죽기 시작했다. 뭐라도 해야 했는데, 이 핑계, 저 핑계로 그저 바라보고만 있었던 내가 밉고, 그 추운 날 나무를 캐 오신 노인회장님께 많이 죄송스러웠다. 나무를 바라보시는 어르신의 심정은 어떨까 싶다.

지나다니면서 말라서 가지만 앙상한 복숭아나무를 보면 가슴이 아려온다. 최종적으로 서른 나무 중에 4그루가 튼튼하게 자랐다. 지금은 두 나무뿐이다. 길옆 밭을 정리할 때, 누군가에 의해 베어진 듯하다. 어린 나무이니 아마 복숭아나무인지 모르고 그랬을 것이다. 두 그루는 바로 옆에서 서로 의지하듯 제법 무성하고 키도 많이 자랐다. 그 어려움을 견뎌내고 살아 주었으니 너무 감사하다. “나무야, 나무야, 고마워.” 복숭아꽃나무에 대한 아픔이 있어 다시 식목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릴 듯하다. 나무도 그러한데, 하물며 사람이라면…. “그 동안에 제가 그 둘레를 파서 거름을 주겠습니다.”(루카 1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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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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