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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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32주일-등 밝힐 기름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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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나라는 저마다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에 비길 수 있을 것이다.”(마태 25,1)


오래전에 도보 여행을 하다 잔칫집에 들어가 푸짐하게 얻어먹은 적이 있습니다. 걷다 보니 그 흔한 식당이 보이지 않는 겁니다. 알고 보니 혼인 잔칫집이었습니다. 행색과 냄새가 말이 아닌 길손도 먹고 마시는 혼인 잔치, 하늘나라에 비유될 만합니다. 요즘 결혼 피로연 문화에서는 생각할 수 없긴 합니다.

혼인 잔치는 예수님의 하늘나라 비유의 단골 메뉴입니다. 혼인 잔치를 벌인 임금의 비유도 있고, 예수님이 첫 번째 징표를 보인 곳도 혼인 잔치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의 열 처녀 비유는 그다지 와 닿지 않습니다. 신부도 아니고 들러리 열 처녀가 뭐 그리 대수인가 싶습니다. 메시지가 약하게 느껴집니다. 두 가지 점에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첫째는 왜 혼인 잔치에 신부가 아니고 들러리 처녀인가? 둘째는 깨어있음의 의미와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입니다.


1. 왜 신부가 아니고 들러리 처녀들인가?

혼인은 인륜지대사이고 거룩한 것입니다. 혼인으로 가정이 생기고 창조사업은 이어지고 세상은 번창합니다. 참으로 큰 경사이며 축복의 자리입니다. 여기에 잔치가 없을 수 없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몇 날 며칠 혼인 잔치를 벌였다고 합니다. 혼인 잔치는 잔치 중의 잔치입니다.

혼인(예식)의 주인공은 신랑 신부인데 신부는 보이지 않습니다. 구약에 보면 예언자들은 하느님이 이스라엘을 신부로 맞이하지만, 이스라엘은 배신하고 불륜을 저지른다고 고발합니다. 신약에선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오셨지만 역시 유다인들은 알아보지 못하고 박해하고 죽이려 듭니다. 우리는 지금 다시 오실 재림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신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까닭은 우리 자신이 신부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 아닐까요.

혼인 잔치에 참여한 모든 이들은 오매불망 신랑을 기다리는 신부가 되어야 합니다. 신랑 맞이 이벤트에 뽑힌 열 처녀는 또 다른 우리 모습입니다.



2. 어떻게 기쁨이 넘쳐나는 흥겨운 잔치로 만들 것인가?

잔치에 필요한 것들은 무엇일까요? 넉넉한 음식과 흥을 돋우는 술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잔치에 참석한 이들은 각자 역할이 있습니다. 성모님은 가나에서 열린 혼인 잔치에서 주방을 책임 맡았나 봅니다. 포도주가 떨어진 걸 아시고 예수님에게 청을 넣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은 향기 가득한 포도주를 만드셨습니다. 아무도 모르고 성모님과 물을 퍼간 일꾼들만 아는 신비로운 포도주입니다. 주님의 첫 징표가 포도주라니? 하늘나라는 무엇보다 즐거워야 하나 봅니다.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즐겁게 먹고 마셔야 합니다. 사람들로 복작대야 잔치입니다. 자기 아들 혼인 잔치를 베푼 임금의 비유에선 오죽하면 길거리에서 만난 어중이떠중이 모두 데려와 잔칫상을 채웠겠습니까.

그러나 혼인 잔치에 신랑이 없으면 혼인 잔치가 아닙니다. 열 처녀는 등을 밝혀오시는 신랑을 마중 나가야 합니다. 신랑이 늦어지자 열 처녀 모두 졸다 잠이 들고 맙니다. 한밤중에 신랑이 온다는 소리를 듣고 저마다 등을 챙깁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처녀, 다섯은 기름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기름은 등 안에 있어 보이지 않기에 간과한 것입니다.

슬기로운 처녀 다섯은 보이지 않지만 기름까지 챙겼습니다. 작은 것이지만 깊이 생각하는 것, 그것이 예지이고 사랑입니다.(지혜 6,15) 깨어있음은 파수라기보다는 지금 여기,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입니다. 등잔의 기름은 가게에서 살 수 있는 물품이 아닌 것 같습니다. 일상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마련하는 것이 아닐까요.

고맙다는 말 한마디에 한 방울, 사랑스러운 눈길 한 번에 한 방울, 의로운 결단에 한 방울, 어려운 이를 위한 손길 한 번에 한 방울씩 말입니다. 등불에 불을 밝힐 기름은 바로 사랑이라고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말합니다. 너무 늦으면 안 되겠습니다. 그날 그 시간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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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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