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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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짓말은 먹음직스런 ‘선악과’처럼 달콤한 유혹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66.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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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잉소통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거짓말인줄 알고도 자주 듣고 보면서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사진은 인류 최초의 거짓말쟁이인 성경 속 뱀이 아담과 하와에게 과일을 따 먹도록 한 모습을 그린 작품. OSV

“우리 모두는 거짓말을 하지. 진실을 말하는 것처럼 웃으면서 쉽게 거짓말을 해.” 드라마 ‘SKY 캐슬’의 OST곡 ‘We All Lie’의 한 대목이다. 웅장함과 우아함 그리고 몽환적이기까지 한 이 노래는 ‘우리는 가짜고 거짓말쟁이’라고 장엄하고 당당하게 선포한다. ‘돈과 명예 그리고 외모, 다 갖추고 싶어? 그러면 적당한 위선과 거짓으로 가면을 쓰고 서로를 속여야만 해!’라며 유혹의 손길을 보내는 듯하다. 나만 거짓의 그늘 속에 있는 것 같아 부끄럽고 비굴하게 느껴질 때, 노래는 ‘괜찮아! 우리 다들 속이며 살잖아?’라고 속삭인다.

대부분 우리는 자신이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생각보다 많은 거짓말을 하고 산다. 누군가 선물을 주면 좋아하지 않아도 ”와, 딱 내 스타일인데”라고 말한다. 편하지 않은 사람이 ‘밥 먹자’라고 하면 ‘나도 그러고 싶은데 선약이 있다’고 한다. 약속 시간에 출발하지도 않았는데 ‘지금 가고 있다’고 할 때도 있다. 관계를 위한 거짓 칭찬에 감동하고, 듣기 좋은 하얀 거짓말에 고마워한다. ‘나’를 지키기 위한 거짓말도 있다.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난처한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체면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기 이익을 위한 악의의 거짓말도 있다.

마이클 캐플런의 「뇌의 거짓말」에 소개된 사회심리학자 데보라 그루엔펠드(Deborah Gruenfeld, 스탠퍼드대학)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사람이 권력을 갖게 되면 규칙을 무시하고 극단적 이기심과 거짓말로 안하무인격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일단 권력이 부여되면 예의 없이 늘어진 자세로 앉거나 타인을 방해하는 행위를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이기적인 태도는 처음부터 타고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경제와 정치 분야 권력자들이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태도로 논쟁거리가 될 때, 그의 주변 사람은 “그는 당신들이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고 두둔한다. 정말 인격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이 안하무인의 사람으로 만들어 놓았을까?

대단한 권력을 쟁취한 정치인이나 경제인이 아니라 직장이라는 조직에서도 승진한 사람에게 “완장을 차니 사람이 달라졌다”는 말을 한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도 있다. 책임과 위치가 그 사람을 성장시키기도 하겠지만, 욕심 없고 겸손했던 사람이 권력을 차지하자 권위적이고 오만해졌다는 의미도 있다. 만약 권력을 지키기 위해 혹은 자기 이익을 위해 거짓말로 사람들을 대한다면 결국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어떤 ‘진실’도 말하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업무 보고가 올라갈 것이다. 심지어 누군가는 권력자가 듣고 싶어 하는 거짓말로 인정받으려 할지도 모른다. 거짓은 또 다른 거짓으로 이어지고 조직은 점점 부정직함에 무뎌지고 진실에서 멀어질 것이다.

‘거짓말은 할수록 는다’는 속담이 있다. 사실 뇌과학적으로도 맞는 말이다. 처음 거짓말을 할 때는 소뇌 편도체가 크게 활성화된다. 하지만 반복적으로 하면 반응 횟수가 줄어든다고 신경학자들은 말한다. 거짓말을 자주 하다 보면 뇌가 부정직한 것에 둔감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개인에게만 해당할까? 여론조작과 가짜뉴스가 넘치고 권력자의 속임수가 빈번하다면 사회 구성원들의 반응은 어떠할까? 처음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지만 유사한 일이 빈번하면 부정직함에 둔감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인류 최초의 거짓말쟁이로 성경 속 ‘뱀’을 꼽는다. “뱀이 저를 꾀어서 제가 따 먹었습니다.”(창세 3,13) 하지만 뱀이 하와에게 억지로 먹이진 않았다. 여자는 스스로 팔을 올려 나무에서 과일을 따 먹었다. 아담 역시 하와가 강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먹어보라고 주었고 아담은 스스로 과일을 받아먹었다. 과잉소통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거짓말인줄 알고도 자주 듣고 보면서 믿고 싶어하는 경향이 있다. 매 순간 인터넷의 수많은 상품 후기들과 과장 광고, SNS의 허황된 이슈를 접한다. 누구도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는다. 그저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런 ‘선악과’처럼 달콤한 유혹이다. 우린 점점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에, 진실보다 더 감동적인 거짓에 익숙해지면서 부정직함에 무뎌져 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된다.



영성이 묻는 안부

‘꼬리가 개의 몸통을 흔든다(wag the dog)’란 서양 속담이 있습니다. 증권시장에서는 주가가 현 가치보다 미래 예상 가치에 흔들린다는 의미지요. 정치가에서 자신의 비리를 덮기 위해 유권자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유도할 때 사용하는 정치 속어이기도 합니다. ‘미디어’가 대중을 흔들어댈 때 ‘웩더독’이라고도 하지요. 현재의 진실을 감추는 행위입니다. 누구나 모두 ‘진실’일수도 없고 또 모두 ‘거짓’일수는 없겠지요. 그런데 거짓말을 자주 하다 보면 그것이 진실처럼 기억되기도 합니다. 수많은 공약으로 유권자들의 표를 얻어낸 정치인들의 말을 기억하고 있나요? 혹시 익숙한 나머지 ‘괜찮아! 우리 다들 속이며 살잖아?’라는 ‘We All Lie’ 노래처럼 관대해지는 것은 아닌지, 그리고 ‘진실’이 우리 관심에서 멀어지는 것은 아닌지 성찰해봅니다. “진실한 증인은 여러 목숨을 구하지만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는 속임수만 일삼는다.“(잠언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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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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