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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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데…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3. 가십과 갈라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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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뒷담화만 하지 않아도 성인이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OSV


“한국이 겉보기엔 좋아진 거 같은데요. 정신까지 성장했는지는 의문이에요. 조금 친하다 싶으면 외모나 남에 대한 험담 혹은 정치이야기나 하니 피곤해요. 게다가 연예인들 사생활까지 들추며 잡담을 해요. 아름다운 자연이나 좋은 이야기를 해도 부족한 시간인데 말이에요.”

언젠가 외국에 살다 오랜만에 한국에 들어온 한 지인의 말이다. 그럴 때가 있다. 가족이나 친한 친구들을 만나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 순간 유명 연예인이나 정치인에 대한 이슈로 빠지게 된다. 유명인들이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친구나 이웃처럼 그들의 ‘집이 몇 평이니, 가방이 얼마니, 이혼을 했느니’ 등의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언급될 때가 있다. 문제는 그러다가 정치 이슈로 넘어가기만 하면 누군가 흥분하고 비속어까지 등장해 분위기가 험악해진다. 때론 정치와 상관없는 현상까지 정치로 묶는 정치 극단주의적인 성향으로 기울어지면서 어느 쪽이든 편을 가르게 된다.

요즘 뉴스를 강박적으로 찾아보는 뉴스 중독에 빠져 사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대화의 주제는 나와 가족이나 이웃에 관한 이야기보다 인터넷에 떠도는 뜨거운 이슈가 입에 오른다. 자극적일수록 더 빠져들고 가십이나 루머로까지 이어진다. 물론 어느 시대건 가십이나 루머는 있어왔다. 하지만 무한 복제가 가능한 디지털 정보시대의 가십은 쉽게 악성루머로 변질되어 무한 생산된다. 2년 동안의 데이터양이 인류 역사 전체 기간에 축적한 양보다 많고, 5000년 축적된 데이터가 단 하루 만에 생산된다고 한 것이 몇 년 전이었다. 그렇다면 지금은 또 얼마나 많은 데이터양이 생산되고 있을까?

뉴스는 상품이다. 자극적일수록 잘 팔리고 가십거리가 되어 더 멀리 퍼져나간다. 이러한 가십성 소통이 남을 비방하는 악성 댓글로 옮겨지고 수많은 댓글과 트윗으로 우리의 소통환경을 어지럽힌다. 게다가 인터넷 공간에 숨어 직접 대면해서 할 수 없는 험악한 말들을 마구 쏟아낸다.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퍼붓고 증오의 감정이 집단과 집단으로 옮겨가면서 요즘 심심치 않게 들리는 ‘갈라치기’란 것을 하게 된다. 한마디로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그르다는 것이다. 이는 ‘이것이 맞으면 저것은 당연히 틀려야 한다’는 참으로 무서운 논리다. 인터넷 세상은 마치 일그러지고 어두운 우리들의 자화상 같다. 생각을 교란시키면서 배설물처럼 쏟아낸 수많은 언어폭력, 근거 없는 비방과 인신공격성 험담은 범죄라는 것도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요즘 우리는 가십의 시대, 갈라치기의 세상에 사는 것 같다. 이런 세상에는 구경꾼이 많다. 유명인을 환한 조명의 무대 위에 올려놓고 구경꾼인 우리는 보는 대로 말하고 책임을 지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구경꾼의 말은 가볍고 심지어 경박하기도 하다. 과장할수록 허위로 변질되고 험담이 된다. 의견보다는 주장이 많고 칭찬보다는 평가의 선을 넘어 비방이 된다. 뉴스를 보면서 손가락질하며 비아냥대기도 하고, ‘세상에 어떻게 저럴 수가…’하면서 가족이나 이웃의 일보다 더 관심을 가지고 흥분한다.

작가이며 심리치료사인 필립파 페리(Philippa Perry)에 의하면 유명인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할 때 뇌의 보상 시스템이 매우 활발하게 움직인다고 한다. 이는 유명인의 불행을 뇌에서는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반응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가십은 사람들과 잘 어울리게 만들어주고 접착제같이 집단의 소속감을 강화시켜준다고 한다. 그러니까 유명인을 끌어내린 대가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사람을 얻어낸다는 말이다. ‘가십’과 ‘갈라치기’의 유혹에 빠지는 이유는? 내 편이 아닌 유명 정치인을 끌어내리면 나는 내 편과 더욱 공고한 관계를 맺고 즐거운 보상이 주어지기 때문일까?

사실 가십의 어원이 지닌 의미는 매우 종교적이다. ‘가’는 하느님(God)이고 ‘십’은 ‘관련이 있는(sibb)’이란 뜻에서 비롯된다. ‘하느님과 관련이 있다’는 의미다. 또한 ‘십’에서 파생된 sibling은 ‘형제자매’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고 보면 ‘gossip’의 어원은 경이롭고 거룩하다. 그런데 어쩌다가 남에 대한 뒷담화나 부정적인 소문이란 의미로 변했는지 모르겠다. ‘가십’의 어원의 의미를 곱씹어보면 하느님 안에 형제자매들과 허물없이 주고받는 대화가 아닐까 싶다. 가십과 갈라치기의 유혹에 빠질 때 ‘가십’이란 단어의 뿌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면 좋을 것 같다.



영성이 묻는 안부

많은 심리학자들은 가십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말을 합니다. 남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집단의 사람들과 친해지는 원리가 있다는 것이죠. 잡담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더 일이 잘된다는 실험결과도 있다고 하면서요. 물론 허위사실을 악의적으로 유포하는 것은 범죄이고요. 가십의 어원처럼 하느님 안에 형제자매처럼 허물없이 부담 없이 주고받는 대화라면 가십은 결코 나쁜 것은 아니겠지요. “거짓 증언을 하지 마라”는 계명을 기억하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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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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