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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7 - 기쁨과 고통의 교차로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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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했으나 한창 투병중이어서 막셀라 수녀님의 방문지도를 받았다. 교리서는 「천주교요리문답」인데, 154항목을 3편으로 나누어 문답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찰고(시험)는 한 편을 마칠 때마다 실시했다.
 위에서 `한창 투병중`이라 했듯이, 1963년의 병세는 매우 좋지 않았다. 약이 듣지 않으니 매일 염증이 몰려오고, 그래서 고름이 나오는 환부가 늘어갔다.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처럼 가족들의 관심도 식어졌다.
 그러나 이대로 죽고 싶지 않았다.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화살기도를 수없이 바쳤다. 하느님께 간절히 매달리면 꼭 들어주신다고 막셀라 수녀님께서 말하지 않았든가. 물론 수녀님은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서도 설명해 주었지만, 아직 믿음이 없는 나는 완쾌해 건강한 몸으로 살고 싶었다.
 그러던 중 하루는 신문에서 메디컬센터(지금의 국립의료원) 윤유선 원장의 기사를 접했다. 눈이 번해진 나는 윤 원장에게 탄원서를 보냈다. 오랜 병력을 알리고 수술대 위에서 죽어도 좋으니 수술해 달라고 간청했다. 그러자 며칠 후 치료해 주겠으니 당장 오라는 답장이 왔다.
 이 소식은 나에게 새로운 걱정을 주었다. 수술을 받다가 죽을지 모르는데, 그때까지 교리는 2편 찰고만 받았다. 마지막 3편 찰고를 통과하지 못했으니 세례를 받지 못한 채 상경해야 할 상황이었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세례를 받고 싶었다.
 내 딱한 사정을 알게 된 막셀라 수녀님이 나섰다. 수녀님은 김병준(요한) 주임신부님께 알렸고, 김 신부님은 성탄 예비신자들과 함께 영세하도록 배려했다. 남은 3편 요리문답을 계속 공부한다는 조건이었다. 그리하여 며칠 뒤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났다. 그날은 1963년 12월 23일이었다.
 이듬해 1월 나를 진찰한 메디컬센터에서는 여러 종류의 약을 주었다. 환부를 수술하려면 고름이 멎어야 하므로 약물치료가 선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당시 이 병원은 스칸디나비아 삼국의 약품지원을 받고 있어서, 국내 약에 내성이 생긴 나는 하루가 다르게 효과를 보았다.
 그 해 3월에는 놀랍게도 환부가 깨끗이 아물었다. 그러자 병원에서는 수술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통보했다. 수술하는 경우에 대퇴부관절을 고정시켜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평생 생활하는 데 불편하다는 것이었다. 병이 나았고 보행이 자유로우니 그대로 지내라는 것이었다.
 나 역시 이제 완쾌됐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때 경제적인 자립이 시급했으므로 서울 천호동 종토장에서 앙고라토끼를 십여 마리 구입했다. 나는 목포 본가에 아파트식 토끼장을 만들고 열성적으로 사육했다.
 그러나 시내에서의 사육은 수월하지 않았다. 토끼의 주식인 아카시아 잎 같은 사료를 구하려고 시골에 가서 네댓 시간씩 채집하는 나날의 작업이 큰 고역이었다. 그로 인해 그해 10월에 다시 발병하고 말았다.
 날이 갈수록 염증이 몰려오더니 화농이 되었다. 나는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고 가위로 환부를 쨌다. 혼자서 몰래 치료하면서 토끼를 사육했으나 다음해 2월 끝내 들통이 났다. 급히 토끼들을 처분하고 메디컬센터를 다시 찾았다.
 그런데 이번엔 내성이 생겨 약이 듣지 않았다. "우리나라에 나와 있는 약으로 치료할 수 없으니 더 이상 오지 마세요." 담당의사에게서 사형선고 같은 말을 듣는 내 마음에 슬픔의 비가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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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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