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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과 문학의 징검다리] 16 - 보배 있음에 가슴에 해가 뜨다

박광호(모세, 시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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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자산이 된 젊은 날 고생
 젊은 날 고생은 사서 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젊어서의 고생이 인생에서 가치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의 젊은 날은 인생의 값진 자산이다. 내가 원한 것은 아니었지만 처음에는 육신의 병으로, 그 후에는 생활의 질곡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대구에서의 4년 생활은 새로운 세계의 체험이었다. 근로자들이 저렴한 임금에 시달리면서도 열심히 사는 것이 인상적이었고, 정부의 밀어붙이기식 정책에 편법을 쓰는 기업의 어려움도 보았다. 그리고 공해관리와 품질관리의 중요성을 현장에서 체득한 것은 큰 수확이었다.
 그뿐 아니라, 사회인으로서 나 자신을 돌아보는 시기였다. 경제적으로도 목포에서보다 나았고, 두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는 것 역시 여느 부모와 다름없는 즐거움을 주었다. 더욱이 대구에서도 레지오 단원으로서의 삶이 신앙생활을 윤택하게 했다.
 나는 그곳 대안동본당 성모승천 쁘레시디움에 전입했다. 집이 있는 비산동에서 제법 떨어진 이 본당에서 활동하게 된 것은 강 데레사 수녀님의 권고 때문이었다. 강 수녀님은 내가 소년 꾸리아 단장일 적에 목포 산정동본당 소년 레지오를 지도했다. 마침 대안동본당 원장수녀님으로 계셔서 인사차 갔다가 레지오를 소개받은 것이다.
 이 쁘레시디움에서 단장이 됐고, 얼마 후 무염시태 꾸리아 단장에 선출됐다. 내가 단원으로서 주로 활동한 것은 파티마병원 환자 돌보기였다. 매주 1회씩 환자들을 찾아보는 활동인데, 얼마 가지 않아 그들이 나를 기다렸다. 일회성이 아닌 꾸준한 친교의 결과였다. 그들 중 몇몇은 퇴원하면서 입교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염색업체를 퇴직한 후 대구를 떠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마땅한 직장이 없어서였다. 악기점을 할 생각으로 광주로 이사했다. 그러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백화점 점포를 계약했다가 해약하면서 돈만 떼이고 하릴없이 고향 땅을 다시 밟았다.
 나에게 보배 있음이여
 목포에 내려온 나를 반긴 사람은 `흑조시인회` 동인들이었다. 가난하게 살면서도 예향을 지킨 친구들은 끈끈한 우정으로 나를 위로했다. 이들과 어울려 술잔을 기울며 문학을 토론했다. 이 술판이 한밤중에 나의 집에까지 이어지기도 했다.
 나는 지방 출판사 편집장으로 일했다. 한동안의 실직상태를 털고 일하는 즐거움이 컸다. 더욱이 아내와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출근하는 기분이 흐뭇했다. 그때 탄생한 시가 `보배 있음이여`이다. 어느덧 30여 년 세월이 지난 지금도 코끝이 찡한 시이기에 여기 소개한다.
 [때저린 실크 넥타이 비뚤어져 있을까/아니면, 앞니에 고춧가루 끼었을까/잘나거나 엄숙치 못한 얼굴을/거울 속에 재 보고/많이 늙었다는 아픈 웃음 짓고서야/애정을 담아 놓은 밥통을 손에 듭니다 // 이것이 내 출근 신호올시다 // 파아란 인생을 속아 사느라/파리해 버린 아내의 입술에서/"조심하세요"/듣기 좋은 한마디가/하아얀 입김으로 훨훨 날아갑니다 // 씩씩이와 똑똑이, 두 아들 녀석이/판에 박은 인사말이나/팔딱팔딱 뛰는 억양으로/추위 속에 나의 등을 밀어냅니다 // 나에게 있음이여/보배 있음이여/벌어 놓은 재화 대신/빚을 벌어 놓았으나/나 또한 든든한 배경 있으니 살맛이요/도무지 칼날 같은 세파가 겁나지 않습니다 // 오늘도 가슴에는/뒤웅박만한 해가 떠 있습니다.]
 그때 큰아들이 일곱 살이고, 작은아들이 다섯 살이었다. 두 아들은 아내와 더불어 나의 살아 있는 보배였다. 그들이 있기에 나는 꿋꿋이 생활전선에 나설 수 있었다. 그들은 내 삶의 의미이자 희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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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8-1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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