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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0) 하느님 뜻과의 조화 (14)

‘몸’의 중요성/ 정신적 차원보다 몸이 먼저 하느님 인식해서, 합치·연민·융화되어 세상에 참된 역량 발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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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한 여성이 한 남성을 사랑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사랑은 행동을 변화시킨다. 숨겨진 사랑은 없다. 사랑하는 감정은 자연스레 여성의 몸짓과 눈짓, 얼굴 표정 등을 통해 남성에게 전달될 것이다.

이처럼 우리의 모든 ‘내어줌’의 행위는 몸을 통해 드러난다. 외적인 육체의 행위를 통해 정신과 마음이 표출되고, 더 나아가 정신과 마음 또한 더 깊은 사랑의 차원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인간은 원래부터 그렇게 형성되어 있다. 이러한 물고 물리는 순환 고리가 육체, 정신, 마음이라는 인간 형성의 토대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사랑을 베풀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행위를 모두 몸으로 한다. 사랑을 받고, 도움을 받는 것도 몸으로 한다. 몸이 중요하다. 정신은 몸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알 수 없다. 몸은 내면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오랜 기간 인류는 몸보다 정신을 더 높은 가치가 있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 유럽 가톨릭 신학계에 몸의 신학이 대두되고 있다. 이는 형성신학적 차원에서는 아드리안 반 카암 신부님께서 벌써 수십 년 전에 간파한 문제다. 몸의 중요성에 대해 가톨릭 신학자들이 주목하기 시작했다는 점은 늦었지만 환영할 일이다.

나의 눈빛이, 내 한마디 말이, 내 손길 하나가 얼마나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보잘 것 없는 우리들 한 명 한 명의 소소한 눈빛과 말 한마디, 손길 하나하나가 세상에는 큰 선물이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손으로 환자를 고치고,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몸으로 보여준 모든 그 행위들이 우리들에게는 큰 선물로 다가온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몸 자체가 선물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 어떤 생각을 하셨는지, 어떤 원의를 가지셨는지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당신의 몸을 통해 나온 외적인 모습 때문이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만큼 몸이 중요하다.

우리는 몸을 통해 세상을 성화해야 한다. 정신과 마음으로 세상을 성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구체적으로 몸으로 세상에 뛰어들어 세상을 바꿔야 한다. 몸이 세상을 맑게 할 수 있다.

거꾸로 말하자면 이 세상의 모든 소음과 공해는 몸 때문이다. 생각은 조금 나쁜 경향이 있다고 해도 몸은 좋은 쪽으로 움직여야 한다. 그래서 습관이 중요하다. 몸에 좋은 것이 배이도록 해야 한다. 몸을 변화시켜야 한다. 성체 조배를 위해 먼저 성체 조배의 중요성에 대해 인식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몸이 성체 앞에 무조건 나아가 앉아 있는 것도 중요하다. 인간은 그 한계로 인해 정신적 차원에서는 하느님을 완전히 인식할 수 없다. 불가능하다. 하지만 몸은 느낄 수 있다. 성체 앞에 앉아 있는 자세, 손짓, 숨소리 하나하나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 날 갑자기 성체안의 하느님 신비를 체험할 수 있다. 정신이 먼저 하느님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통해서 몸이 움직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몸이 먼저 하느님을 인식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눈 예쁘게… 입 예쁘게… 손짓 예쁘게…. 우리 각자 한 명 한 명의 눈과 입과 손짓이 예뻐지면 세상도 예뻐진다. 우리들의 몸이 예뻐지면 세상도 예뻐진다. 얼굴 가꾸고, 몸매 가꾸기 위해 성형외과를 찾을 필요 없다. 비싼 화장품을 살 필요도 없다. 최고의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하느님께서 직접 우리를 메이크업 해주신다. 그 메이크업을 묵묵히 받아들이면 된다. 그래서 일단 나의 몸부터 변화시키면, 그 영향으로 나의 내면도 변화된다.

내적인 면, 정신과 마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 아니다. 분석하기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우리 각자의 내면에 집중하는데 에너지를 쏟으려 하지 말고, 쉬운 외적인 면부터 우선적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이다. 설거지 하나를 할 때도 어떤 모습으로 하는지, 기도할 때 어떤 모습인지, 성당 올 때 옷차림을 어떻게 하는지, 이웃에게 충고할 때 어떤 눈빛으로 하는지, 직장 동료에게 어떤 표정으로 대하는지…. 이것이 중요하다.

내적인 것에 대한 무분별한 집중과 집착이 오히려 영적인 생활을 방해할 수 있다. 영성은 선물이다. 우리의 몸 자체도 선물이고 그 선물은 세상에 바르게 전달되어야 한다.

몸으로 드러내지 않으면 영성은 그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는다. 깊은 영성은 세상에 빛으로 저절로 드러난다. 그 도구가 몸이다. 만약 몸과 행동에서 빛이 나지 않는다면 그 영성은 가짜 영성이다.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 사랑하는 연인을 바라보는 눈으로 하느님을 보고 하나가 되어(합치), 연인의 상처를 감싸는 손길로 이웃을 치유하고(연민), 몸으로 세상 사람들과 유연하게 어울리고(융화), 구체적 행동을 통해 세상에 참된 역량을 발휘해야 한다.

영성적인 삶은 몸의 자세 하나부터 바르게 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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