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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50) 사랑의 방법

사랑, 남을 이해하는 ‘배려’의 또 다른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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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신부님의 초등학교 3학년 겨울방학 이야기입니다. 그 신부님은 초등학교 시절, 방학이 되면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사시던 시골에서 지냈답니다. 그런데 당시 서울 아이가 시골에 가면, 시골 또래 아이들이 “서울 촌놈 왔다”며 놀아주지 않았답니다. 자신은 그들과 친구가 돼, 들이며 산이며 뛰어놀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자신과 놀아주는 유일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건 할머니가 키우던 검정개였답니다. 그 개만이 시골에 가면 늘 반겨주고 놀아주고 함께 들과 산으로 뛰어다녀주던, 그야말로 ‘절친’이었습니다. 그 개를 사랑한 그 신부님은 뭐든 검정개랑 함께하고 싶었답니다.

어느 겨울 저녁, 할머니는 아궁이에서 손자가 좋아하는 군고구마를 구워주셨답니다. 노릿하게 구워진 고구마는 반으로 툭 쪼개면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야말로 기가 막히게 맛있는 군고구마였답니다. 할머니에게 고구마를 건네받은 신부님은 호호 김을 불며 한입 먹다가 문득 절친 검정개랑 함께 먹고 싶어졌답니다.

그 생각이 들자마자 개집이 있는 마당으로 뛰어갔습니다. 개집에서 웅크리고 있던 검정개도 절친을 보자 후다닥 나와 꼬리를 흔들며 좋아하더랍니다. 반갑게 개를 끌어안은 신부님은 사랑하는 마음에 그 맛난 군고구마를 개가 한입에 먹을 만큼 떼어주었습니다. 그러자 검정개 역시 절친이 주는 군고구마를 날름 받아 한입에 삼키려는데, 순간 평생 듣지도 보지도 못한 시멘트에 쇠 갈리는 듯한 울음소리를 내면서 미친 듯 날뛰더랍니다.

이 소리를 듣고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무슨 큰일이 났나 싶어 맨발로 마당에 뛰어나오셨는데 발광을 하는 검정개를 유심히 보던 할머니는 깜짝 놀라 얼어있는 손자에게 “개에게 뭘 먹였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좀 전에 할머니가 준 군고구마 반쪽을 줬다”고 했더니 그날 밤 할머니에게 심한 꾸중을 들었다고 합니다. 개는 뜨거운 것을 못 먹는데 그렇게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니 개는 먹는 것인 줄 알고 왈칵 먹고 삼키려다가 입안 전체가 다 데어버렸다는 말씀과 함께 말입니다. 그 후 며칠 동안 그 개는 정말 아무것도 못 먹고 개집에서 누워만 있었답니다. 신부님이 다가가도 꼬리만 흔들어댈 뿐 말입니다.

이야기 끝에 신부님은 자신을 친구로 받아주고 따르던 개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뜨거운 군고구마를 주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것이 개에게 치명적 고통을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랑, 그것도 방법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조건 주고 싶은 마음, 특히 내가 좋아하는 것 또한 사랑하는 사람이 좋아하리라는 생각에 뭔가 주고 싶다면,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 사랑하는 그 사람이 지금 무엇을 진심으로 필요로 하고, 바라는지 알아보는 것도 소중한 일입니다. 사랑은 뭘 먼저 많이 주는 것보다 사랑의 방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 때로는 그 생각이 어쩌면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결과적으로 어려움과 고통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 봅시다. 사랑, 어쩌면 그건 배려의 또 다른 말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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