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57) 하느님 뜻과의 조화 (21) 신앙 안에서 중심의 ‘빛’ 향해 나아가자

대부분 우울함은 자신의 문제에서 비롯돼/ 남과 다름을 인정하고 자신의 역할 찾아야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우리 주위에는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열등의식으로 고개를 제대로 들지 못하고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반대로 오만한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도 많다. 지위와 명예, 돈을 지키기 위해 아귀다툼하면서 살아가는 이들도 많다. 모두 우울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우울한 삶을 싫어한다.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래서 노래방도 가고, 술도 마시고, 친한 사람도 만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도 세상에는 우울한 사람들로 넘쳐난다. 우리는 왜 이렇게 살아갈까. 대답은 간단하다. 인생을 못 깨달아서 그렇다.

우선 열등의식으로 가득한 사람을 보자. 어떤 이는 자신이 할 줄 아는 일이 하나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것을 못 견뎌 할 수도 있다. 현대인의 80 이상이 열등의식 속에서 살아간다는 보고도 있다. 이 열등의식이 모든 우울함의 출발점이다.

어떤 이는 이 열등의식 때문에 전혀 어떤 시도조차 않으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머리를 감싸 쥐고 주저앉아 방문을 나서려 하지 않을 수 있다.

반대로 어떤 이는 열등의식 때문에 다른 사람을 이기기 위해 모함하고 시기하고 질투할 수 있다. 내가 가지지 않은 것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억지로 빼앗으려고 할 수 있다. 이런 사람은 자연히 다른 사람들의 비판에 직면하게 하게 되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더욱 아귀다툼 속으로 뛰어드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이러한 악순환은 모든 삶을 고통스럽고, 우울하고, 의미 없는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우울함은 주변의 환경과 상황 때문에 찾아오는 것이라기보다는 이처럼 나 자신의 문제에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

생각을 바꿔보자.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고 우울해 하지 말자. 다른 사람보다 능력이 모자란다고 우울해 하지 말자. 다른 사람보다 돈과 명예가 적다고 우울해 하지 말자. 다른 사람의 자녀보다 내 자녀가 공부를 못한다고 우울해 하지 말자. 남과 자신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우울하게 만드는 이런 맹추가 어디에 있는가.

인류가 하느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아 컴퓨터 혹은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기계를 만들었다면, 그냥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하면 된다. 컴퓨터를 다룰 줄 모른다고 스마트폰을 다룰 줄 모른다고, 생각할 필요 없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번지점프를 한다고 해서 나까지 번지점프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번지점프를 내가 왜 하는가? 번지점프 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저런 사람도 있는가 보다’하면 되는 거다.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은 그냥 그대로 두면 된다. 그저 “넌 그것을 해, 난 이것을 할게”라고 하면 된다. 왜 그런 것에 신경을 쓰는가.

나는 밝은 한낮의 빛이다. 하느님은 나를 다른 사람과 다르게 창조하셨다. 내가 해야 할 역할이 따로 있다. 다른 사람이 하는 역할이 화려해 보이고, 돈도 많이 벌고, 이름을 드날리는 것으로 보인다고 해서 나까지 그런 일을 할 필요는 없다. 나는 나에게 주어진 역할을 찾아서 하면 된다.

나는 다른 사람과 다른데, 다른 사람과 같아지려고 하니까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부자든 가난한 사람이든, 지위가 높은 사람이든 낮은 사람이든 세상 사람들은 모두 내면의 어려움을 가지고 있다. 내면적 어려움이 없는 사람 손들어 보라고 하면 아무도 손을 들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돈이 아니다. 지위도 권력도 명예도 아니다. 거꾸로 말해서 돈과 지위와 명예와 권력을 차지한다고 해서 우울함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왜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우울하게 살아갈까. 2분만 설명하면 알아들을 수 있는 삶의 가치관, 인간 창조의 섭리를 알아듣지 못해서 그렇다. 그래서 욕심꾸러기들이 많아지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빛이다.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다. 그렇게 창조됐다. ‘빛’, 이것이 바로 나의 이름이다.

나의 예쁜 꽃을 피우기 위해선, 내가 원래 가지고 있던 ‘빛’의 성향을 기억해 내고 그 ‘빛’을 향해 움직여야 한다. 이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나의 예쁜 꽃을 온실에서 창가의 햇볕이 드는 장소로 옮겨 놓아야 한다. 지금 어쩌면 나의 꽃은 그늘이 지는 어둡고 침침한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빛’ 쪽으로 가야 한다.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 것이 아니다. 중심의 ‘빛’을 향해 일관되게 나아가는 것이다.

종교를 대충 헐렁이로 알면 안 된다. 종교적 신앙 안에서, 중심의 ‘빛’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의 역할이다. 이를 깨닫고 그 인간다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 깨달음이 나를 환하게 하고, 세상을 환하게 한다.


정영식 신부(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07-29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4

마태 25장 13절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