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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67) 참으로 묘한 기도의 힘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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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린 친구는 그렇게 하느님 품으로 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입관 예식에 갔는데, 영안실 분위기는 침통 그 자체였습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학생의 마지막 가는 길을 멀리서 지켜보면서, 금방이라도 제게 ‘강 벗’이라고 불러줄 것 같은 그 아이의 목소리가 자꾸 귓가에 아른거려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아이의 엄마가 저를 보더니 손짓하며, 자신의 아들의 마지막 얼굴을 보라고 권유했습니다. 천천히 학생이 누워 있는 관으로 가서 눈물로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그 녀석이 저에게, ‘어이, 강 벗. 왔어? 나 먼저 간다. 강 벗은 이다음에 내가 있는 곳으로 꼭 와야 해. 그동안 고마웠어’하고 말하는 듯했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후, 지금까지 저는 저를 ‘강 벗’이라고 불러주는 그 녀석 생각에, 기도 중에 이 땅의 ‘이름 모를 소아암’ 환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최근 중요한 문서 몇 개를 여러 나라 언어로 작성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운 좋게도 외국어에 능통한 어느 자매님을 알게 돼 그분에게 몇 개의 서류 번역을 부탁드린 적이 있습니다. 그분 역시 무척 바쁜 분인데 제가 하는 일을 너무나도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다 그분께 은혜도 갚을 겸 ‘저도 어떤 도움을 드리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분은 이런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신부님, 저 다른 거 원하지 않고요. 가끔 우리 딸을 위해 기도해주세요. 사실 우리 딸이 어릴 때 소아암을 앓았는데 정말 기적처럼 치유됐어요. 지금도 병원에서 정기적으로 치료를 받고 있는데 경과는 참 좋아요. 기적 같은 일이라 하느님께 감사드릴 뿐이에요. 그래서 이런 봉사도 기쁘게 하고 있어요. 내 딸을 살려주신 하느님께 제가 무엇을 못하겠어요.”

‘소아암’. 그 단어를 듣는 순간, 갑자기 전율이 일었습니다. 십여 년을 넘게 이름 모를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도했는데 ‘문득 하느님이 내 기도를 들어주신 것이 아닐까’ 하는 그런 착각 아닌 착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분에게 저의 경험을 들려드렸고, 저를 ‘강 벗’이라 불러주던 그 친구를 하늘나라로 보낸 이후 지금까지 소아암 환자를 위해 기도를 드렸고, 앞으로도 드릴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자 그분이 먼저 감동하시더니 “아마도 우리 애가 신부님 기도로 살아난 것 같아요. 신부님의 간절하고 애절한 경험에서 나온 기도의 은사를 우리 애가 받은 것 같아요. 신부님, 정말 놀랍네요”하고 말했습니다.

참으로 묘한 기도의 힘이었습니다. 일상 안에서 제가 아는 사람만이 아닌, 정말이지 기도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를 위해 오랫동안 기도를 바치게 되면, 그 기도의 은사가 반드시 누군가에게 간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잠깐이지만 주님은 누군가에 대한 기도의 응답에 대한 확신도 느끼게 해주셨습니다.

오늘도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이름 모를 소아암’ 환자를 위해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문득 그렇게 죽을 때까지 하나의 지향을 가지고 기도를 드린다면, 언젠가 누군가에게 전해지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그런지, 기도를 바치고 나면 마음이 참 따스해집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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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2-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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