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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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73) 하느님 뜻과의 조화 (37) 느긋한 마음 갖기

부족한 것 받아들이며 주님께 맡기고 채우면 돼/주님 주신 선물인 시간을 마음과 영의 시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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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유수(歲月流水). 세월이 물처럼 빨리 흐른다는 뜻이다.

나이 40대, 50대, 60대를 넘기다 보면 흐르는 세월에 대한 조바심이 강해진다.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에 대해 안절부절 못하고, 뭔가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째깍째깍 흐르는 시간이 아쉽고 안타깝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다가는 인생을 허비해 버리겠다는 두려움까지 느끼고는 한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그냥 영적으로 살면 되는데, 그것이 잘 안 된다. 정신적 차원으로 살기 때문이다. 정신적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참으로 두려운 것이다. 하지만 영적 차원에서 보면 죽음은 새로운 차원으로 옮아가는 영광스러운 것이다. 정신으로 생각하다 보니 죽음이 의미 없게 다가온다. 외롭고, 쓸쓸하고…. 괜한 걱정을 하지 말아야 한다. 쓸쓸한 삶은 없다. 외로운 삶은 없다. 영적 차원에서 보면 인생은 신 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완전한 삶을 살기 힘들다. 스스로 지닌 인간의 한계 때문이다. 가장 완벽한 인간 삶이 100의 삶이라면 70 정도 성취하면 군자 급의 삶이다. 80의 삶은 성인 급의 삶이라고 보면 된다. 부족한 것은 그냥 부족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하느님 은총에 기대서 하나둘 메워 나가면 된다. 영적 차원에서 겸손의 덕을 성취하면 이런 여유로운 삶이 가능하다.

완벽하게 살려고 하고, 완벽하게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은 모두 정신적 차원으로 접근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하는 느긋함을 상실하고 있다. 전화하고, 카카오톡하고, 문자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전철을 타면 모두들 스마트폰 들여다보느라 정신이 없다.

왜 하느님께는 문자를 안 보내는가. 하느님은 최신 스마트폰을 가지고 계시다. 그런데 하느님은 정작 거의 문자를 받지 못하고 계시다. 하느님보다 더 중요한 분이 있는가. 하느님께 전화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는가. 정작 신경 써야 할 곳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이 어리석은 우리 인간이다.

하느님은 푸짐하게 살 수 있도록 늘 우리를 안배하신다. 그런데 우리는 “더 벌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 느긋하지 않다. 느긋한 마음으로 기도도 하고, ‘감사합니다’라고 고마움도 표시하고, 거저 받은 것을 이웃과 나눌 줄도 알아야 하는데 도통 그럴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잘 생기고 직장도 좋고 돈도 많은 어떤 이성이 나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온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까. 그 좋은 분이 끊임없이 데이트 신청을 하고 있는데 우리는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다. 느긋함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정신적 차원에만 생활해 왔기 때문이다.

어떤 청년이 24시간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가정해 보자. 청년은 아마 인터넷 게임만큼 자신을 사로잡는 것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마지막 결과를 볼 때까지 계속 게임에만 빠져 들어갈 것이다. 이 청년을 아끼는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컴퓨터와 청년을 분리시킬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 게임보다 더 행복한 일들이 세상에는 널려있다고 말해줄 것이다.

우리는 혹시 지금 인터넷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진정한 행복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자극에만 몰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가진 시간은 내가 공로를 쌓아서 얻은 것이 아니다. 거저 주어진 선물이다. 하느님께서 나에게 시간을 허락해 주셨기에, 지금 우리가 시간을 즐기며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온 것이다. 하느님이 시간을 주셨다. 세상 만물도 하느님이 창조하셨지만, 시간도 하느님이 창조하셨다.

이 시간은 내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 안에서의 시간이다. 육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보낼 것인가. 정신이 원하는 대로 시간을 지낼 것인가. 아니면 마음과 영의 시간을 보낼 것인가.

아기들은 육신의 시간을 보낸다. 먹을 것이 떨어지면 울며 보챈다. 그런데 인간은 성장하면서 차츰 정신의 시간을 보내게 된다. 생각하고 판단하고 추리하는 시간을 살아간다. 하지만 인간은 이 정도 수준에서 멈추라고 하느님이 창조해 주신 것이 아니다. 영의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우리가 깨닫지 못하고 흘려보내는 지금 이 순간도 사실 영적인 시간이다. 세상의 매 순간순간이 영의 시간이다. 세상 우주 만물의 조화와 흐름의 시간은 참으로 영적이다. 해가 떠오르고, 별이 운행하고, 귀뚜라미가 울고, 새들이 날갯짓을 퍼덕이며 날아가는 그 모든 시간이 영적이다.

그런데 정작 영적인 시간을 인식하고 살아가야 할 인간은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다. 정신만 사용하며, 높은 차원을 보지 못하고 있다. 머리로만 살려고 하기 때문에 공명의 시간(하느님 뜻과 조화되는 완벽한 시간)을 모른다. 그러면 삶의 의미를 잃게 된다. ‘의미’란 과연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의미’를 성취할 수 있을까. 진정한 의미 있는 삶은 어떤 것일까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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