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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적 삶으로의 초대Ⅱ] (74) 하느님을 충만히 드러내는 의미 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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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생활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단어들이 있다. 그중 하나가 ‘의미’(意味, meaning)라는 단어다. 국어사전을 보면 의미는 ‘말이나 글의 뜻’, ‘행위나 현상이 지닌 뜻’, ‘사물이나 현상의 가치’라고 설명돼 있다. 하지만 신앙인의 사전에서는 더 심오한 뜻을 지니고 있다. 신앙인에게 있어 ‘의미’란 ‘영원한 것으로 채색된 충만한 삶’이다.

어떤 의미를 느끼고 살아갈 것인가가 중요하다. 어떻게 하느님을 충만히 드러내는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느냐가 중요하다. 진정으로 하느님 뜻과 완벽히 조화된 의미의 삶(공명의 삶)은 영원으로 충만한 삶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원과 거리가 있는 육신과 정신이 의미 없다는 말이 아니다. 영과 마음만이 의미 있다는 말이 아니다. 육신을 유지하기 위해 밥을 먹는 것은 상당한 의미가 있다. 다만 이 밥 먹는 행위가 진정한 신앙적 의미를 지니기 위해서는 육신적으로만 밥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의미 없는 밥 먹기는 곤란하다.

정신적 차원도 마찬가지다. 정신을 사용해 우리는 공부를 한다. 그러나 공부가 권력과 명예 추구를 위한 공부가 돼서는 안 된다. 공부 그 자체는 큰 의미가 있지만 그 지향점이 잘못될 때 공부의 진정한 의미는 상실하게 된다.

진정한 진리는 의미가 충만히 체험될 때 우리에게 다가온다. 공명의 삶, 즉 하느님 뜻과 완벽히 조화된 삶을 살게 되면 밥을 먹을 때도 충만한 의미를 체험할 수 있다. 운동할 때도, 이웃과 담소를 나눌 때도 엄청난 의미를 체험할 수 있다. 나날이 새로움을 체험하고, 그 새로움 속에서 영적 성장을 이룰 수 있다.

똑같은 텔레비전 드라마를 보더라도 10대와 20대, 30대, 40대, 50대가 이해하는 의미는 다르다. 지적 수준과 삶의 경험이 나이가 들수록 다양해지기 때문이다. 10대가 느끼지 못하는 의미를 50대 사람들은 충만히 느낄 수 있다. 영적 성장도 이러해야 한다. 성장해 가면서 삶 안에서 더 높은 차원의 의미를 발견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신앙인이 60대가 돼도 삶의 의미 하나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한다면 말이 되겠는가. 영적으로 성장하는 사람은 똑같은 밥을 먹어도, 똑같은 공부를 해도, 똑같은 운동을 해도 의미가 매일 다르다.

의미를 깨닫는 사람에게는 밥이 영이고, 공부가 영이고, 운동이 영이다. 운동 그 자체를 통해 건강한 영적 생활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되고, 공부가 얼마나 영적 성장의 밑거름이 되는 지를 알게 되고, 밥이 영적 양식이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영적인 삶을 살게 되면 매일매일의 의미가 새롭고 충만하게 다가온다. 해를 봐도 어제의 해와 다르고, 산을 봐도 어제 보던 산과 다르다. 성철 스님은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나는 성철 스님이 산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고, 물의 새로운 의미를 발견했다고 해석한다.

영적 성장을 이룬 신앙인은 자연을 봐도 그냥 보이지 않는다. 그 안에서 하느님의 신비를 발견해 낸다. ‘참으로 아름다운 자연을 만들어낸 건축가’를 찬미하게 된다. 하느님만큼 위대한 건축가가 또 있겠는가. 영적 성장을 이룬 신앙인은 육신과 정신도 다르게 사용한다. 공부할 때도 이런 지적 성취를 가능하게 해주신 하느님의 놀라우신 섭리에 감탄하게 된다. 운동하면서도 하느님을 찬미한다. 이러한 경탄과 경외는 바로 헌신으로 이어진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됐습니다.”(1코린 9, 22)

여기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말은 모든 이들에게 무조건 잘해주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몸이 아픈 사람에게는 쓴 약을 주는 것이 사랑이다. 수술이 필요한 사람은 고통스러운 수술도 받아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고 모든 이의 모든 것이다.

정신만 많이 쓰고 자기라는 테두리 안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이들이 많다. 이들에게는 깨우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정신만 사용할 때 우리는 좁은 의미의 이기적 삶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럴 때는 큰 수술을 받아야 한다. 큰 병을 가진 환자는 대수술을 받고 치유된다. 영적 대수술은 인간을 회개시킨다.

영적인 삶의 의미를 발견하게 되면 경탄과 경외를 하게 되고, 그럴 때 우리는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 되는 진정한 헌신의 삶을 살 수 있다. 이 헌신은 고통도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세상과 그 세상 안에서 살아가는 모든 이와 일체감을 체험하면서 세상을 살아가게 된다. 창조된 세상 안에서 살아가면서 내 존재 의미를 구현해 내는 것이 바로 충만한 은총의 삶이다. 하느님의 의미를 체험하고, 그 의미를 세상 안에서 구현해 낼 때 세상은 다르게 보인다. 다르게 보이면 다르게 행동한다. 진정한 의미 체험 하나가 이렇게 한 인간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수 있다.


정영식 신부 (수원교구 군자본당 주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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