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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석진 신부의 세상살이 신앙살이] (171) 성지에서 만난 아름다운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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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어느 교구 순교자 기념관에서 순례자들과 성지 후원회원들을 위한 영성 강의와 미사 부탁을 받아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그날이 토요일이고, 금요일 저녁까지 기차표가 많이 남아 있어, 예매도 하지 않고 당일 오전 10시30분 즈음 서울역에 도착해 기차표를 사려는데, 아뿔싸! 매표소 직원은 오후 1시가 넘어야 좌석이 있고 좀 더 빨리 가려면 12시 영화 관람석 표만 남아있다고 했습니다.

할 수 없이 1시간30분을 기다린 후 영화 관람석 기차를 탔습니다. 기차 안에서 오늘 강의하게 될 내용을 정리하려 했는데 영화 관람석을 탄 것입니다. 영화가 곧 상영될 것이라며 직원분이 열차 내 블라인드를 내려 어두컴컴한 공간을 만들었고, 객실 내 스피커에서 나오는 커다란 음향 소리는 결국 열차 안에서 자지도 못하고 생각도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비몽사몽으로 영화 관람을 했고, 영화가 끝나자 기차는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계속 머리로는 강의 시작을 어떻게 할까 걱정하면서 역 근처 가까운 성당에 순교자 묘소가 있기에 그곳에 먼저 들러 순례를 했습니다. 순례하면서도 강의를 잘 할 수 있도록 기도했습니다. 4시부터 강의가 시작되기에 1시간30분 정도의 시간이 남아 그곳 순교자 기념관을 혼자 돌아보았습니다.

그렇게 순례를 하는데, 바로 앞에 연세가 좀 들어 보이는 두 분의 자매님이 순례를 하고 있었습니다. 한 분은 신앙생활을 좀 오래 하신 듯 다른 친구에게 기념관에 전시되어 있는 순교 사료들을 친절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호기심에 무슨 말씀들을 하시나 하고 몰래 귀동냥을 했더니 그분은 친구에게 순교 영성, 순교 정신, 순교에 대한 신학적 의미나 진리에 대한 생명의 투신 등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경험과 체험이 담긴 살아온 이야기로 그 친구에게 순교에 대해 쉽게 이야기를 해주고 있었습니다.

친구 역시 알아들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입니다. 그러다 은퇴하신 교구 주교님 사진 앞에서는 반가워하시고, 시성식 때문에 한국을 방한하신 복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사진 앞에서는 아기처럼 환하게 웃으며 시성식 당시 자신이 어디서 뭐 하고 있었고, 또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설명을 했고, 친구분은 “그렇게나 좋았어?” 하며, 함께하지 못했음을 아쉬워했습니다.

두 분의 모습을 보면서 무릎을 탁 치고 말았습니다. ‘그래 저 모습이야.’

자신의 삶 속에서 신앙의 경험들이 얼마나 벅차고 기뻤는지를 나누는 두 분의 모습에서 순교 관련 멋진 신학적 진술과 유식한 척 강의를 하고자 했던 저 자신의 긴장감이 한순간 무너져버렸습니다.

그리고 오늘 강의의 멋진 시작을 궁리하던 저 자신이 하염없이 초라하게 느껴졌습니다. ‘철학적 논리가 바탕이 된 신학적 사유 안에서 논리정연한 하느님을 복잡하게 설명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일상에서 경험했던 것들을 하느님의 마음으로 다시금 반추해 생각해 보고, 그것을 자연스레 옆 사람과 나누듯 그렇게 나누는 것들, 그것들도 참 좋은 ‘믿음 살이’의 한 방법일 것입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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