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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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0> 갈라진 세상과 교회의 투신

불평등으로 갈라진 세상, 일치 위한 교회 투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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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를 인간다운 발전으로 이끄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고, 또한 사회와도 일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투신이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1항).

 그동안 교회의 나눔과 섬김과 사귐에 대해 몇 차례 살펴보았다. 교회 직무로서의 예언직과 사목직, 사제직에 대해서도 말했다. 그 연장 선상에서 `교회의 투신`에 대해 이야기한다.

 #양극화 이면, 절대 풍요와 절대 빈곤

 개막 50년을 맞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현대 세계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를 급격한 변화와 심각한 불균형으로 보았다. 또한 현대 세계의 인간이 처한 상황을 희망과 고뇌로 진단했다.

 이를 가장 극명하게 서술한 내용 가운데 하나가 "인류가 이토록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누려 본 적은 결코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인구의 상당수는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사목헌장」 4항)일 것이다. 한쪽이 부를 쌓을 때 다른 쪽은 굶주리는 형국이다.

 사람들은 이를 `양극화`라고 부르지만, 이 용어는 사회현상에 대한 문제의식을 무디게 한다. 양극은 중간 부분이 있음을 전제로 하는 말이다. 이 말은 듣는 사람 대부분이 자신은 양극의 중간지대에 있다는 착각에 빠지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중간지대의 급속한 붕괴, 곧 중산층의 빠른 붕괴 현상을 보인다. 중간지대가 상위로 올라가면 그것을 발전이라 말할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중산층 붕괴는 하위층으로 추락하는 빈곤화를 뜻한다. 이 양극화는 사실 `소수의 풍요로움과 절대다수의 빈곤`을 뜻한다.

 교회는 "현대 세계는 경제와 금융의 복잡한 세계화 현상을 특징으로 한다"(「간추린 사회교리」 361항)고 진단했다. 교회는 세계화가 가져올 `기회`를 다음과 같이 인정할 뿐만 아니라 그 `위험`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세계 경제 분야의 새로운 기회들을 확인하는 것과 더불어 상업과 금융관계의 새로운 차원들과 관련된 위험을 보게 된다. 실제로, 선진국과 개발도상국 사이에서뿐만 아니라 선진국들 사이에서도 불평등이 심화되는 경향을 드러내는 수많은 징후들이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62항).

 오늘날 세계경제를 위기에 몰아넣은 금융 위기에 대해서도 교회는 이렇게 진단하고 있다.

 "이른바 `세계 자본시장` 조성은 자본의 유동성 증가로 생산성 부문의 자원 접근성을 높였기 때문에 유익하였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금융 위기의 위험을 증대시키기도 하였다. 금융 거래량이 실물 거래량을 훨씬 능가한 지금, 금융 부문은 경제의 실질적 토대를 무시하고 자신만을 발전의 준거로 삼을 위험이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368항).

 #불평등과 불균형 숙명 아니다

 `소수의 풍요로움과 절대다수의 빈곤`은 소수 금융자본 소유자의 무한 풍요로움과 아울러 절대다수인 실물시장 참여 시민의 절대 빈곤화 쯤으로 해석할 수 있다.

 몇 해 전 세계 금융시장의 상징인 미국 월가의 시위자들이 내세운 구호`1 : 99 사회`는 이를 반영한 것이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밝힌 심각한 불평등 혹은 심각한 불균형 역시 마찬가지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 개막 50년이 지났음에도 이 심각한 불균형 정도가 개선되기는커녕 오히려 심화하고 있다. 이 지구는 하나의 지구촌이 아니라, 두 세계로 갈라져 그 거리는 급속히 벌어지고 있다. 상상초월의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을 만끽하는 세계와 역시 상상초월의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이들의 세계가 그것이다.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 경제력을 누리는 사람들은 언제나 장밋빛 희망을 노래한다. 그러나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람들은 신음 내는 것조차 버겁다. 세상은 풍요로운 재화와 경제력을 소유하는 것이 유능함이며, 가난과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무능함이라고 끊임없이 세뇌한다. 무능을 탓해야지 유능함을 탓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세상의 불평등과 불균형은 마치 필연이며 숙명의 그 무엇이 돼버렸다.

 교회는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의 사회와 일치하기 위해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회로의 투신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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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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