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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1> 갈라진 세상과 교회의 투신(2)

정치, 누구를 위한 도구인가 시민 섬기는 봉사 정신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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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바로 사회를 인간다운 발전으로 이끄는 데 있다. 이를 위해 교회는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고, 또한 사회와도 일치해야 한다. 이것이 교회의 투신이다"(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사회적 관심」 31항).

 지난 호에서 경제 분야의 심각한 불균형, 소수의 풍요와 절대다수의 빈곤에 대해 살펴봤다. 또 심각한 사회 양극화와 관련해 `교회의 투신`을 성찰했다. 교회는 `풍요로운 재화와 능력과 경제력`의 사회와 일치하고자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는 사회와의 투신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일회용 소비자로 내몰린 시민
 그런데 이 불균형 현상을 경제 분야에서만 볼 수 있는 건 아니다. 정치 분야에서도 양극화가 위세를 떨치고 있다. 요즘 각 정당은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후보를 내세우기 위해 분주하다. 그런데 정당에 속하지 않은 어떤 인물의 지지율이 기존 정당의 유력 후보 지지율을 무색하게 한다. 그리고 어느 진보(?)정당은 내부 문제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정치의 계절이 돌아왔다. 같은 몸에 다른 옷을 걸쳤을 뿐인 이상한 진보와 이상한 보수가 서로 자리다툼을 하고 있다. 사회적 약자와 소외계층을 대변하는 진보정치세력은 뿌리를 내리지도 못한 채 좌초할 위기에 처했다. 우리에게 진보정치세력이 형성된 것인지, 우리에게 보수정치세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 의구심이 들 때가 많다. 이 땅의 시민 대부분은 정치 주체라기보다는 소비자, 그것도 일회용 소비자로 내몰린 게 현실이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의 토대와 목적은 `시민을 위함`이어야 한다. 그러나 진보정치세력과 보수정치세력에서도 시민을 위하는 마음은 찾아볼 수 없다. 저마다 권력, 그것도 지배권력을 탐하는 세력 사이에서 `그들만의 정치`만 요란하다는 생각이 든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수구의 분파에 불과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그러는 사이 시민은 철저하게 이방인으로 혹은 구경꾼으로 내몰린다.

 정치 분야에서도 그렇게 양극화는 심화된다. 정치를 업으로 삼는 "소수가 막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지만, 다수는 자발적으로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가운데 흔히 비인간적 생활조건과 노동조건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사목헌장」 63항).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불균형과 불평등이 "인간의 마음속에 뿌리박힌 더욱 근본적인 저 불균형에 직결된다"고 보았다. 어떤 점에서는 맞고, 어떤 점에서는 틀렸다. 모든 인간이 존엄하다는 명제 역시 맞지만, 인간이라고 같은 인간이 아니라는 현실 역시 부정할 수 없다. 자신이 처한 상황의 한계를 뼈에 사무치게 체험하며 좌절조차 사치인 세계의 사람들과 무한한 자기 욕망을 주체 못하는 세계의 사람들과 어떻게 같은 사람이라 할 수 있겠는가(「사목헌장」 10항 참조).

 #갈라진 세상, 교회는 답해야 한다
 게다가 정치공동체인 한 국가 안에서 시민을 위해 경제를 통제해야 할 정치와 사회는 점점 시장의 유익한 도구쯤으로, 곧 경제의 충실한 봉사자로 전락하고 있다.

 "매일같이 현 경제위기를 수놓고 있는 사건들을 보면 `시장`이 국가를 지배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자칭 `민주주의 주권 국가`라고 하나 국가는 시민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그어놓고, 시민이 요구할 수 있는 것에 양보를 종용하는 모습이다. 국민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을 확인한다. 바로 정치 지도자들이 자국민 이익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들은 국가나 민주주의의 준엄한 원리에서 비켜 있는 유럽연합(EU)이나 국제통화기금(IMF) 같은 국제기구들을 위해 봉사한다"(르몽드 타블로이드 2012년 1월호 1면).

 인류의 심각한 의문은 어떻게 한 인류가 두 하위 부류로 그렇게 철저하게 나뉘고 있는가이다. 피조물들에 대한 지배를 날로 강화할 수 있는 소수의 권력 독점 정치세력은 무능(?)한 부류의 대다수 사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피조물로 만들어가고 있다(「사목헌장」 9장, 10장 참조).

 이 심각한 의문에 교회는 답해야 한다. 인류 구원의 도구인 교회가 갈라진 세상에 대해 침묵하는 것은 인류 구원의 공동체성과 보편성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거룩하게 하시거나 구원하지 않으시는 분"(「교회헌장」 8항)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하느님과 이루는 깊은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며 도구(「교회헌장」 1항)다. 그리스도께서 가난과 박해 속에서 구원 활동을 완수하셨듯, 교회도 똑같은 길을 걸어 구원의 열매를 사람들에게 나눠 주도록 부름 받고 있음(「교회헌장」 8항)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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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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