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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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2> 폭력에 익숙한 사회, 폭력을 용인하는 국가

평화와 폭력은 공존할 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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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책하다 보면 종종 경찰 순찰차를 만난다. 순찰차마다 5대 폭력을 근절하겠다는 문구가 붙어 있다. 조직ㆍ학교ㆍ성ㆍ주취(酒醉)ㆍ갈취폭력이 경찰이 뿌리를 뽑겠다는 5대 폭력이다.

 산책길에서 학교와 인도 사이에 걸린 현수막도 볼 수 있다. 신고만 하면 학교폭력을 해결해주겠다는 내용이다. 어떤 경우에는 교문 위에 버젓이 `학원폭력 집중 추방기간`이란 현수막도 걸려 있다. 이런 현수막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하다.

 #사회 곳곳 폭력의 그림자
 비록 어린 학생들이 과중한 학업으로 힘들어하지만, 산책하는 동안 스치듯 그들과 만나는 시간은 언제나 기쁘다. 그렇게 예쁜 청소년들과 `폭력`이 어찌 어울릴 수 있단 말인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폭력이 청소년들 공간에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아닌지 마음이 몹시 불편하다.

 근래 경찰이 주취폭력을 추가해 시민들이 알기 쉽게 5대 폭력으로 정리해 주었지만, 어떤 폭력이든 폭력은 국가 공권력의 적이었다. 치안을 담당하는 대다수 경찰은 사회에서 폭력을 추방하기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언론이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을 다룰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배경과 원인 가운데 하나가 `학교 당국의 안이한 대응` 혹은 `묵인`이었다. 학교에서 조직적 따돌림과 폭력이 반복돼도 교사가 몰랐거나, 묵인했거나 적절하게 예방하지 못했다는 질책이 반복된다.

 심지어 폭력을 매매하는 회사가 생겨 성업 중이다. 국가만이 경찰력과 군사력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고전적 국가주의 국가론을 이야기할 필요도 없다. 민간영역의 폭력은 그 어떤 경우에도 용납할 수 없는 불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폭력이 시장에서 매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등장한 셈이다.

 그런데 이것이 최근에 새롭게 생긴 현상은 아니다. 우리 사회는 언제부턴가 민간의 폭력을 묵인했다. 재개발과 뉴타운사업으로 전국의 도시 곳곳에서 갈등이 있었다. 한쪽에서는 재산권을 내세워 개발하겠다고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주거권을 내세워 반대하며 대치했다. 그리고 어느 시점에 이르면 철거를 강행했다. 대부분의 현장에는 용역회사에서 파견된 혹은 시행사가 계약을 맺고 임시로 고용한 직원들(?)이 있었다.

 철거현장에서는 철거 반대 주민과의 충돌이 충분히 예상되는 상황이며, 많은 경우 물리적 충돌이 발생한다. 그 현장에 혹은 그 주변에 20대 초반의 경찰기동대원들이 있으며, 사복에 무전기를 든 경찰도 있다. 폭력행위가 일어나도 경찰은 누군가의 명령으로 묵인하고 지켜 볼 뿐이다. 헬멧 속 청년 경찰의 눈빛은 폭력을 고통스럽게 각인한다.

 #심판이 경기 중 반칙을 못 본체 하면

 노동자와 사용자 사이의 갈등 현장인 노사분규 현장도 철거현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출동한 경찰의 목적이 폭력적 충돌을 막는 것이 아니다. 노사분규를 그저 지켜보는 경찰은 어느 한 쪽을 편든다는 비난을 면하지 못한다. 이 때 내세우는 명분은 언제나 노사자율, 주민자율 해결 원칙 같은 것이다. 이는 단체경기 중 반칙을 했는데 심판이 못 본체 하는 것과 같다.

 가난하고 힘이 없는 세입자 혹은 재개발을 반대하는 주민이 억울하고 화가 나서 자금을 갹출해 폭력을 상품으로 파는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는다고 가정해보자. 그 용역회사 직원들이 재개발 현장에 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만일 노동조합이 회사 측 용역회사 직원 동원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만은 없다며 또 다른 용역회사와 계약을 맺으면 어떻게 될까? 헬멧을 쓰고 곤봉과 방패를 손에 든 건장한 청년들이 고용주를 위해 무력으로 충돌할 것이다. 각각 자신을 고용한 쪽과의 계약이행을 내세워서….

 폭력이든 폭력의 묵인이든 그 어떤 경우도 불법이다. 시민은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해 달라고 국가에 경찰력이라는 공권력을 위임했다. 그런데 우리는 폭력을 용인하는 국가를 체험하고 있다.

 폭력은 교회 가르침에 명백하게 어긋난다.
 "인간관계와 사회관계에서는 폭력이 출현하였다. 평화와 폭력은 공존할 수 없으며, 폭력이 있는 곳에 하느님께서 현존하실 수 없다"(「간추린 사회교리」 488항).

 불법을 따지기 이전에 교회는 폭력을 악이며 거짓이라고 분명하게 밝힌다. "폭력은 악이며,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고, 인간에게 걸맞지 않는 것이다. 폭력은 우리가 믿는 진리, 우리 인간에 관한 진리와 상충되기 때문에 거짓이다. 폭력은 그것이 수호한다고 주장하는 것들, 곧 인간의 존엄과 생명, 자유를 파괴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96항).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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