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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39>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세상 속 하느님의 일, 외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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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와 함께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원로들이 보낸 무리도 칼과 몽둥이를 들고 왔다(…)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마르 14,43-50).
 복음 가운데 가장 짧지만 가장 오래된 것으로 추정되는 마르코복음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는 참 딱한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차치하고, 그분과 한솥밥을 먹던 제자들 태도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외면한 열두 제자
 예수님께서 가까이 불러 사도로 세우신 제자들을 마르코 복음사가는 어떻게 묘사하는지 살펴보자. 우선 그들에게는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빵의 기적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다(4,39)", "그토록 깨닫지 못하였다"(6,52),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으며, 마음이 그렇게도 완고했다"(7,18),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기억조차 하지 못했다"(8,17-18).

 베드로는 비록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하고 그럴듯하게 고백했지만 정작 예수님으로부터는 "사탄아, 내게서 물러가라. 너는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8,27-34)하며 꾸지람을 들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두 번째로 예고하셨을 때도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분께 묻는 것도 두려워했다.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을 때는 놀라워하고 또 두려워했다. 예수님께서 당신이 마실 고난의 잔을 마실 수 있는지, 또 당신이 받을 세례를 받을 수 있는지 물었을 때 제자들은 "할 수 있습니다"(10,38)하고 자신 있게 대답했다. 그러나 말뿐이었다.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수석사제들에게 팔아넘기려고 그들을 찾아갔다.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모두 떨어져 나갈 것이다"라고 했을 때 베드로는 "모두 떨어져 나갈지라도 저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심지어 "스승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저는 결코 스승님을 모른다고 하지 않겠습니다"하고 대답했다. 다른 제자들 역시 모두 그렇게 말했다.

 결국, 제자들은 모두 예수님을 버리고 달아났다. 그것뿐이 아니다. 베드로는 누군가 예수님과 한패라고 지목하자 거짓이면 천벌을 받겠다고 맹세했다. 그는 "나는 당신들이 말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오"라며 예수님을 부정했다. 물론 예수님 말씀이 생각나서 울기 시작했지만 말이다. 그 울음은 오래가지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말을 듣고도 믿지 않았다. 두 제자의 말도 믿지 않았다. 마침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그들의 불신과 완고한 마음을 꾸짖으셨다.
 
 #다시 외면받는 그리스도
 이렇게 마르코복음이 전하는 제자들 태도는 한결같았다. 예수님 행보를 기찻길에 비유하면 예루살렘을 향한 상행선이다. 제자들은 상행선에 몸을 실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하행선을 향했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었다. 살아있을 때도 돌아가고 부활하신 다음에도 그랬다.

 어찌 보면 수석사제들과 바리사이들, 율법학자들, 그리고 원로들이 그토록 바라던 것, 곧 예수님을 제거하려한 집요한 시도를 다른 누구도 아닌 벗이자 제자들이 완성해준 셈이다. 예수님이 무엇을 했기에 그들이 제거하려 했고, 제자들은 왜 스승을 지켜주지 못하고 오히려 버림으로써 그들을 도와주었을까? 스승은 세상에 참 생명과 평화를 회복하려고 했다. 반면 권력자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를 막으려 했다. 그런데 제자들은 십자가를 짊어지고 스승과 동행하는 대신 편하고 넓은 길, 곧 `하느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만`을 선택했다.

 목자 없는 양과 같은 군중이 곳곳에서 신음하고 있다. 지금 누리고 있는 편안함과 권력을 위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군중을 발아래 두려는 세력의 집요함은 여전하다. 정도(正道)를 벗어나 탐욕의 사도(邪道)를 취하더라도 괜찮다고 한다. 오히려 그것이 성공이며 경쟁력이라 미화하기까지 한다.

 마침내 강은 만신창이가 되고, 산은 허물어지고, 하늘은 구멍이 나고, 땅은 오염됐다. 이제 사람의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한다. 구럼비가 깨지고, 핵발전소가 세워지고, 4대강 물길은 콘크리트 덩어리에 막혔으며, 노동자들은 길거리로 내몰렸다. 그런데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은 이를 막거나 힘없는 자들을 지켜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버리고 달아나버렸다. 십자가가 두려웠고, 불편했으리라.

 "자기 품에 죄인들을 안고 있어 거룩하면서 언제나 정화되어야 하는 교회는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한다"(제2차 바티칸공의회 「교회헌장」 8항).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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