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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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사회교리] <4> 강론, 건전한 논란(?)을 기대하며 <중>

현실문제, 그리스도적 시각으로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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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가 강론대에서 전하는 그리스도인 생활규범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문제를 복음적 시각에서 해석하고 해설하는 것까지 포함한다.
삽화=임선형
 
 
    지난 호에서 사제는 강론시간에 신앙의 신비와 그리스도인 생활규범을 해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앙의 신비를 해설하는 경우에는 논란이 적다. 신앙의 신비를 완전하게 해설하고 온전하게 이해해서라기보다 신앙의 신비 자체의 성격 때문일 것이다. 누군들 신앙의 신비를 이성과 언어와 체험으로 온전하게 해설하고 또 이해할 수 있겠는가.


#강론, 그리스도인 생활규범 해설

 논란은 강론 내용이 그리스도인 생활규범에 대한 해설일 때 벌어진다. 생활규범에 대한 이해가 사람마다, 시대에 따라, 그리고 환경에 따라 저마다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신앙과 생활규범을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이해하면 그리스도인 생활규범은 단순한 종교적 의무를 이행하는 정도에 머문다. 그것을 넓은 의미로 접근하면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ㆍ환경ㆍ제도ㆍ세계질서와 평화 같은 구체적이면서 현실적 영역까지 확대될 수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생활규범을 지나치게 좁은 의미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미사 참례와 기도 및 고해성사 등 본당 테두리 안에서의 신심활동 및 봉사활동 정도다. 몇 가지 규칙과 규범을 성실히 수행하면 신앙생활을 충실히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제대로 하지 못하거나 이른바 냉담 중이라고 한다.

 이 같은 분위기에서 신앙과 생활규범을 정치ㆍ경제ㆍ사회 등의 영역으로 확장해 해석, 해설하는 것을 신자들은 낯설고 불편해하기까지 한다.

 예를 들어 십계명 가운데 5계명은 `살인하지 마라`인데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회교리는 이 대목에서 `평화`와 `전쟁`에 대해 설명한다. 전쟁 문제에서는 군 복무에 관한 것도 다루는데, 그 가운데 이른바 `대체복무제`에 대해서도 말한다. 교회는 양심에 따라 무력사용을 거부하는 행위를 적극적 평화 수호 및 평화 증진 행위로 인정한다. 또 국가는 이런 사람들을 위해 대체복무 등으로 공동체에 봉사할 기회를 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가르친다.

 평화에 대한 설명에는 민감하면서도 분열(?)까지 일으킬만한 대목이 있다. 평화는 단순히 `전쟁 부재` 혹은 `적대 세력과의 균형 유지`로 전락될 수 없다고 말한다. 또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면서 동시에 사랑의 결실이라 밝힌다.

 더 나아가 군비경쟁이 인류의 극심한 역병이며 악의 길이라고 단호하게 비판한다. 사제가 강론대에서 이에 근거해 해군기지건설과 공군 차세대 전투기 도입 등의 군비증강 정책이 교회 가르침에 반(反)한다고 비판하면 이는 말씀 선포의 연장인가, 아니면 사제 개인의 발언인가.

 필자 경험으로는 많은 교우들이 그러한 내용의 교리가 있는지조차도 모른다. 또 그런 이야기를 미사시간에 해도 되느냐고, 혹은 한쪽 편만 드는 발언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킨다며 불편해한다.

 #강론,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당대의 문제들을 그리스도의 빛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사제들 소임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사제의 직무와 생활에 관한 교령」 4항 참조)

 위의 조항에서 말하는 당대 문제란 당연히 구체적이며 현실적이다. 문제 원인이 개인이 아니라 사회에 있고, 사회 구성원 다수에게 영향을 미치며, 그 문제 해결의 필요성이 강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연히 교회와 하느님 백성이 처한 사회 문제를 말한다.

 예를 들어 오늘날 사람들을 힘겹게 하는 가장 큰 문제는 경제문제일 것이다. 99의 사람들이 경제적 어려움에 힘들어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도 세상 한가운데 살기에 이 문제를 초월할 수가 없다. 따라서 경제문제는 그리스도인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사제가 "네 이웃을 사랑하라"는 복음말씀을 놓고 강론을 하면서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을 설명하였다고 하자. 자본주의의 구조적 모순은 자본이 축적되면 될수록 노동의 소외 혹은 노동의 피폐를 가져온다는 것을 말하는데, 이는 자본주의 혹은 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이들도 어느 정도 인정하는 내용이다.

 교회도 경제원리로서의 자본주의가 갖는 한계를 밝히면서 어떠한 경우에도 자본이 노동을 예속시켜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이는 공의회 「사목헌장」과 「가톨릭교회 교리서」, 「간추린 사회교리」에 담긴 일관된 가르침이다.

 사제가 이런 강론을 했다고 하자.
 "국가의 법률적 구조로 통제하지 않는 이런 무한 자유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경제활동을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게다가 이웃 사랑을 실천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그래서 공동선을 위해 오늘의 경제 환경을 개선하고, 정당성을 갖는 국가와 같은 정치공동체는 경제활동에 적절한 통제와 규제를 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를 당대의 문제를 복음의 빛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으로 봐야 하는가, 아니면 세상 문제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으로 봐야 하는가.

 안타깝게도 교회가 경제활동에 있어서 국가 역할(「사목헌장」 65항)을 가르치고 있음을 아는 교우들이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제가 경제문제에 대해 전문가도 아니면서 나선다고 말한다. 경제문제는 경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시는 분들도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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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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