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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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호 신부의 생생 사회교리] <6> 재화 사용의 보편적 목적(1)

재화의 노예가 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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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신의 전 재산을 ○○학교 장학기금으로 혹은 ○○복지재단에 기부했다는 독지가들 소식을 언론을 통해 종종 접할 수 있다.

 우리 마음을 부끄럽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슴에 온기를 전하는 소식이 아닐까 한다. 게다가 기부자가 평생 근검절약하며 모은 돈을 쾌척하거나 고인 이름으로 그 유족이 기부했다면 감동과 부끄러움은 배가 된다.

   여기서 `부끄럽다`는 감정은 재물의 소유에만 관심을 두고 그 사용에 대해서는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는 마음에서 기인한다. 또 이러한 소식에 감동을 받는 이유는 비록 사람이 본성적으로 이기적 존재일지라도 마음 한편에는 이타적 의지가 있다는 뜻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실제로 확인할 수 있다.

 보통 사람들 처지에서 기부 액수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할 수백억 원에 이르기도 한다. 때로는 진정성에 대한 논란이 일어나는 경우도 있다. 재단을 설립해 출연함으로써 편법 증여라는 의혹을 사는 경우도 있고, 세금 감면을 위한 꼼수라는 비판을 받는 경우도 있다.



#사적 소유권, 시민자유의 한 조건

 오늘부터 몇 차례에 걸쳐 우리에게 낯선, 그렇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다지 낯설 것도 없는 `재화의 보편적 목적`에 관해 살펴보자.

 우선 너무 익숙한 사유재산권에 대해 알아보자. 사유재산권은 과연 절대적이며 무제한일까? 교회는 이를 인간 자유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사유재산은 인간의 노동을 통해서, 지성을 사용하여 재화를 자기 것으로 만든 것이며, 사유재산과 재화에 대한 다른 형태의 사적 소유권은 개인과 가정의 자립에 반드시 필요한 조건을 각 개인에게 제공하는 것이며, 이는 인간 자유의 신장으로 여겨야 한다(…) 이는 책임을 이행하도록 자극을 줌으로 시민자유의 한 조건을 이룬다."(「간추린 사회교리」 176항)

 이는 교회뿐만 아니라 자유주의 경제학 분야에서도 다루는 관점이다. 교회는 또한 사유재산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이득을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개인이든 공동체든 다양한 형태의 재산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에게는 더 나은 생활 조건, 안정된 미래, 무수한 선택의 기회와 같은 일련의 객관적 이득이 주어진다."(「간추린 사회교리」 181항)

 이처럼 사유재산권은 자유의 영역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 소유권을 행사하는 주체에게 객관적 이득을 가져다 준다. 그래서 재화의 사적소유 권리를 절대시하려는 경향에 기운다. 재화가 더 나은 생활, 안정된 미래, 선택의 기회와 같은 그런 객관적 이득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 그런 재화를 마다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사유재산권이 시민자유의 한 조건이라고 절대시하면 가혹한 예속화를 가져온다. 어디까지나 재화는 삶의 조건일 뿐 목적이 될 수는 없는 법이다.

 #재화의 유혹과 우상

 더 나은 생활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한 가정당 1.23명으로 세계 222개국 중 217위다. 이처럼 초저출산 현상과 결혼을 늦추거나 하지 않으려는 현상의 원인을 재화의 소유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결혼과 자녀로 인해 오는 재화 부족의 압박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아닐까.

 재화 편중으로 생기는 양극화 현상은 교육ㆍ경제ㆍ정치ㆍ문화ㆍ종교 등 여러 분야에 걸쳐 나타난다. 경제적 격차로 생기는 불확실하고 불안정한 미래에 수많은 이들이 불안해한다. 많은 젊은이가 선택의 기회를 박탈당했다고 느끼며 절망할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더 많은 재화를 소유하기를 갈망하는 것도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그런 갈망에도 이른바 빈곤의 늪은 깊어져 간다. 그리고 빈부격차라는 불균형은 더하면 더했지 개선되지 않는다. 평화를 위협하는 심각한 불균형 원인은 재화의 사적 소유권을 절대시하는 수렁에 깊숙이 빠져 있기 때문일 수 있다. 이런 현상을 개인주의와 경제적 자유주의 같은 용어로 포장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에 관해 의구심을 갖고 바라봐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이득을 가져다주고 시민자유와 권리라 여기는 이 사유재산권이 과연 `절대적이며 무제한인가` 살펴봐야 한다. 사유재산권을 절대시함으로써 치명적 부작용은 없는가, 치명적 부작용이 있다면 사람을 살리는 조치가 반드시 필요한 게 아닌가 돌아봐야 한다.

 재화로 인한 치명적 부작용을 교회는 조금 섬뜩하지만 `재화에 대한 민족ㆍ사회ㆍ사람의 가혹한 예속화`라고 표현한다. 사람이 재화의 노예가 됨으로써 자아를 상실하고 책임마저 잃어버리고 만다.

 "재화는 유혹을 일으키는 기만적 약속만 가져다줄 수도 있다. 재산의 역할을 지나치게 절대시하는 민족이나 사회는 결국 가장 가혹한 예속화를 겪기 마련이다(…) 분별없이 자기가 가진 재화를 우상시하는 사람은 그 재화에 예속되고 그 노예가 되어 버린다."(「간추린 사회교리」 181항)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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