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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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14. 고령기와 꽃밭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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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과 나무는 마음을 화사하게, 마을을 아름답게, 지구를 평화롭게 한다. 꽃밭이 많을수록 인간의 호흡은 깊어지고, 마을 모습은 생기를 찾고, 지구의 생태는 조화와 균형을 이룬다.

꼬미 마을에도 눈에 띄는 공간이 네 곳이다. 마을회관 좌우 면과 마을광장 가로세로면이다. 세 곳은 흙으로 되어 있어 가장자리만 만들면 되는데, 아스팔트로 된 광장 한쪽 면이 과제다. 유래석과 큰 벤치 두 개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도 50m 이상 되는 공간이 남아있다. 아스팔트를 부수고 깨는 기계와 부순 폐기물을 옮기고 흙을 채우는 굴착기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기계와 기술자에 대한 고마움을 느끼는 시간이다.

마을의 얼굴인 광장을 어떤 모습으로 변신시킬까? 넓은 광장에 우리들의 그리움을 담고 심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 광장 한가운데를 원형으로 마을 동산처럼 꾸미고, 달성보로 사라진 하얀 모래밭과 버드나무 숲 그리고 피라미 잡던 샛강, 강개울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 모습을 기억하던 이들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촉촉해지고 그 시절이 그리워질 것이고, 마을을 방문하는 낯선 이들은 마을의 옛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멋진 생각이긴 하나 공간을 효율적으로 쓰는 데 장애가 된다는 이유로 이 아이디어는 보류하기로 했다.

아스팔트를 깨부수는 날 기계음이 온 마을을 진동시켰다. 마치 아스팔트 아래 흙들이 “아, 이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겠구나”라고 포효하는 아우성으로 들렸다. 내 마음 같아서는 한 면이라도 온전히 다 깨부수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관리와 비용 문제로 구역을 짓고 공간을 띄워서 각각 2m가 넘는 총 7개의 꽃밭을 만들었다. 작은 꽃밭 중간중간에는 장승을 만들고 남은 큰 소나무를 배치하여 벤치를 만들었다. 기쁨과 즐거운 소일거리로 꽃밭 하나하나마다 관리 책임자로 팔구십 대 할머니들로 하고, 오실댁, 서촌댁, 대실댁, 창녕댁, 구실댁, 삼대댁, 환터댁 택호로 명패를 붙이기로 했다. 매일 마을회관에 모여 팀을 짜서 윷놀이하고, 저녁밥을 함께 지어 드시는 밥상 공동체 식구들이시다. 네 분은 이미 90세 이상이시고, 내년이면 모두가 90세 이상이 된다. 디자인을 정하지 못해 아직 명패를 달지 못했다. 올해 안으로 해결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가장자리를 무엇으로 장식할까? 흔한 벽돌보다 기와이면 최고일 것 같다. 우리가 사는 개진면 내에 자랑스러운 기와 공장이 있다. 전국 문화재 지붕으로 사용하는 고령기와이다. 마침 이사님이 이 동네 분이다. 네 공간의 가장자리용으로 390여 장을 기증받았다. 문화재용 기와로 이 작은 촌동네 마을 꽃밭을 단장하던 날, 얼마나 뿌듯하고 어깨에 힘이 들어가던지…. 몇몇 구역은 고령기와라고 적혀있는 면을 일부러 밖으로 보이게 하였다. 알리거나 기록하지 않으면 묻혀 버리기 일쑤다. “꼬미 마을 꽃밭을 고령기와로 만들었어요.” 마을 어딘가에 기록하거나 새겨두고 싶다.

꼬미 마을 에덴동산, 기와꽃밭이 해가 갈수록 풍요롭고 풍성해진다. 각자 집에서 가져와서 심기도 하고, 마을 주변 산에 사는 나무를 옮겨 오기도 하고, 최소한 몇 나무들만 꽃시장에서 왔다. 봄부터 갖가지 생명체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하면 온 마을은 이야기꽃으로 피어난다. 애기능금, 금은화, 철쭉, 꽃잔디, 개나리, 남천, 소나무, 노고산 단풍, 맨드라미, 백일홍아, 꼬미 마을을 선하게 함께 지켜나가자꾸나. “주 하느님께서는 보기에도 탐스럽고 먹기에 좋은 온갖 나무를 흙에서 자라게 하시고, 동산 한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셨다.”(창세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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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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