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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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20. 유채씨/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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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이 지난 며칠 후, 한 신부님께서 아버지께 설 인사를 드리러 오겠다는 전화가 왔다. “아이고, 안 되는데요. 설 전날 코로나 감염되신 분이랑 저녁을 같이 먹어서 보건소에 가서 자진 검사를 했어요. 다행히 음성이라는 결과가 나왔지만, 행여나 싶어서 스스로 격리 중입니다” 하고 그 사정을 말씀드렸다. 전화를 끊고 난 후 30분쯤 지났을까? 다시 전화를 하셨다. 어디시냐고 여쭈었더니, 그 이야기를 듣고 지금 돌아가는 중인데, 골목 입구 파란 막대 옆에 종이가방을 하나 두고 왔다고 하셨다.

늘 상상을 초월하는 생각과 행동을 하시는 분이라 그 상황을 상상하면서 혼자서 배꼽 잡고 웃었다. 가방 안을 보니 갖가지 선물이 들어있었다. 그중에 유채 씨앗 한 병을 발견했다. 언젠가 하신 말씀이 기억났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람 보러 오지는 않지만, 꽃을 보러는 온다고 말씀하셨다. 유채꽃으로 마을도 가꾸고, 실험 삼아 씨앗을 뿌려보고 잘 되면 더 많은 땅에 뿌려서 유채 기름을 만들자고 하셨다. 경주, 청도, 고령 등등 유채로 지역연대를 하고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하면 좋겠다고 하셨다.

유채꽃 단지를 어디에 조성할 수 있을까? 우선은 안산 밭 1000평에 심어보고, 동네에 비어 있는 땅들을 빌리고, 그 후론 나라 땅 낙동강 변 하천부지가 수만 평 있지 않은가? 생각만 해도 벌써 다 이루어진 듯 마음은 기쁘고 즐거웠다.

수년 전에도 신부님께서 유채 씨앗을 주셔서 서울 명동 전진상센터 3층 정원에 뿌린 적이 있었다. 노란 유채밭을 상상했는데, 햇빛과 영양분이 적었는지 실오라기처럼 몇 포기만 올라왔다. 다시 재도전이다. 명동은 공기의 질도, 흙의 질도 좋지 않았지만, 이곳은 다르지 않은가? 꿈에 부풀어 씨앗을 뿌릴 가을날을 기다렸다.

드디어 가을, 비가 온 다음 날 유채 씨앗 한 병을 들고 가서 호미로 골을 타고 샛터 꽃밭에 씨앗을 뿌렸다. 이듬해 봄에 틈만 나면 유채가 올라오는지 보러 갔다. 간간이 물도 주면서 얼른 싹을 틔워 올리기를 소망했다. 3월이 지나고 4월도 말경인데 씨앗이 올라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유채와 나는 인연이 안 되는가보다.’ 포기할 즈음 휑한 땅에 파아란 싹이 하나 보였다. 다른 씨앗도 같이 올라올 만한데, 주변에는 맨질맨질한 흙만 보였다. 한 포기라도 어디냐? 대표성을 띄고 네가 올라왔구나, 참으로 고맙다. 내 말을 들었는지 내 마음을 알았는지, 유채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기 시작하여 상상을 초월하는 진녹색 굵은 잎이 되었다. 줄기도 나무처럼 튼튼하고 그 잎은 배춧잎인지 모를 정도가 되었다. 아하, 이렇게 싱싱하고 튼실한 유채도 있음을 평생 처음 보았다.

같은 시기에 씨앗을 뿌린 경주에 사는 선배에게 그곳 사정은 어떤지 물었다. 큰 단지에 뿌린 씨앗은 거의 올라오지 않았고, 자기 집 화단에 뿌린 씨앗은 조금 올라왔다고 했다. 그 원인이 무엇일까? 씨앗 탓일까? 기후 탓일까? 토질 탓일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눴지만, 정확한 원인은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샛터 꽃밭에 핀 그 한 포기는 꽃밭 한가운데서 승승장구하여 여러 갈래로 줄기를 뻗었고, 튼실한 몸에 비해 여리고 여린 가냘픈 노란 꽃잎을 피워올렸다. 그 유채는 씨앗을 뿌린 자 외에 마을 사람 누구의 관심도 끌지 못하였을 것이라 짐작한다. 하지만 잎이 말라 다시 땅으로 돌아갈 때까지 그 자리에서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을 세고 있었을 것이고, 마을의 숨소리를 듣고 있었을 것이다. 나 또한 귀향 후 유채와 특별한 만남으로 농부의 마음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씨앗을 뿌리고 땅을 가꾸는 일은 사람의 일이나 싹을 틔우고 자라게 하는 것은 하느님의 소임임을 다시 깨닫는 말씀을 묵상하는 시간이었다.

“나는 심고 아폴로는 물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자라게 하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1코린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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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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