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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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26. 꽃밭 팻말/자연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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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관솔 갤러리 팻말을 만들면서 지금 마을에 살고 계신 열분 어르신들의 택호를 넣어 마을 꽃밭 10곳에 팻말을 달았다. 지전 양반(샛터꽃밭1), 도진 양반(샛터꽃밭2), 대실색(기와꽃밭1), 창녕댁(기와꽃밭2), 삼대댁(기와꽃밭3), 한터댁(기와꽃밭4), 오실댁(기와꽃밭5), 서촌댁(기와꽃밭6), 병목댁(기와꽃밭7), 구실댁(장승꽃밭)이다.

요양원에 계신 세 분, 모지 양반(103세), 소리댁, 창이댁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서 택호를 넣지 않았다. 이 마을에서 택호를 부르면서 살아온 마지막 세대라 여겨졌기 때문에 사람도 기억하고, 우리의 고유문화도 전승하는 의미에서 꽃밭에 택호를 넣어 이름을 붙였다. 이 세대분들이 서로를 이렇게 불렀다.

퇴근길에 마을 입구에 들어서면서 깜짝 놀랐다. 뜻밖의 풍경을 보고 혼자서 소리 내 웃었다. 꽃밭 주인들이 풀을 뽑고 계신 것이다. 땅바닥에 다리를 펴고 앉아 그 일을 하고 계신 모습을 뵈니 가슴이 짠하기도 하고, 너무너무 감사하기도 했다.

“아지매, 힘들지 않으셔요?” 하니, “서촌댁, 오실댁은 벌써 오전에 풀을 다 뽑았어” 하신다. 거동이 어려운 구실댁은 사위가 대신하고 있었다. 자녀들이 보면 성화를 내겠지만, 인생의 마지막 힘도 마을 공동체를 위해 쏟으시는 그분들의 모습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어르신들이 당신 몸 보살피기도 어려운 연세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을 보여 주시니 무어라 드릴 말씀이 없다. 참으로 보기 힘든 아름다운 모습이다.

2년 전 마을 가꾸기 사업을 하면서 꽃밭에 어르신들의 택호를 넣어 각자가 자기 꽃밭을 예쁘게 가꾸는 담당자를 정하면 좋겠다고 의논한 적이 있었다. 그때만 해도 더 젊으셨다. 지금은 그렇게 하기에는 부담이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번에는 꽃밭 디자인의 하나로 생각하고 명패를 붙였다. 택호를 따라 걸어가다 보면 그분들의 얼굴이 떠오르고 언니, 오빠, 동생 등 그분들의 자녀들이 기억난다. 슬쩍 눈으로 훑어보면 그저 그런 팻말이구나 싶지만, 택호를 기억하는 이들은 누구누구 이름만 들어도 마음이 열리고 그리움으로 남는다. 오호라, 팻말 하나에 택호를 따라 사람 명상, 자연 명상, 마을 명상길이 열렸구나.

아직 남아 있는 꽃밭이 있다. 마을 회관 옆과 앞길이다. 어르신들 다음 세대들의 이름으로 팻말을 만들자고 의논해 봄 직하다. 얼마 전 노인회장님께서 마을 젊은이들에게 “자네들도 대부분 환갑이 지났는데, 누구야, 이름 부르는 것보다 택호를 부르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한 적이 있다고 하셨다. 마을 청년(75세 이하)들은 서로 의논해 보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마을의 역사가 세대를 연결하면서 이렇게 전수되는구나 싶었다. 한마을에 같이 살면서 같은 세대들이 누구씨, 사장님, 대표님, 선생님, 원장님 등 역할에 따른 호칭보다 평등과 상호존중이 묻어날 수 있는 택호를 쓴다면 우리는 한우리 공동체의 맛을 더 진하게 볼 수 있으려나? 꼬미댁, 꼬미양반(어른)들이시여, 서로에게 택호를 부르면 어떨까요? 한참 동안 서로 많이 웃을 것 같다.

팻말 하나에도 의미를 담으니 우리의 삶이 한층 더 멋있어 보이고, 근사해졌다. 꼬미 마을의 새로운 부흥이 이제 시작이다. 샛터꽃밭, 기와꽃밭, 장승꽃밭 담당자이신 임금님, 왕비님들이시여, 꽃밭 한가운데에 있는 능금나무가 능금나무 숲이 될 때까지 건강 유지하시어 복 받은 인생, 충만한 인생길이었다고 노래하게 되시길 빕니다. “임금님, 만수무강하시기를 빕니다.”(다니 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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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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