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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보나벤투라 (7월 15일)

1217?~1274년, 이탈리아 출생 및 프랑스 선종, 추기경, 세라핌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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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나벤투라 성인은 이탈리아 중부 비테르보 근처 산골짜기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 있는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의 본래 이름은 조반니 디 피단차였습니다. 보나벤투라라는 이름으로는 수도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바꿨는데, 어린 시절 중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했을 때 어머니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중재 기도를 바쳐 기적적으로 치유됐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합니다.

보나벤투라는 수도자가 되기 전 당시 유럽 학문의 중심지였던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습니다. 파리대학교 문학부에서 철학을 공부했고, 1243년 문학 석사 학위를 받고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했습니다.

성서 학사 학위를 받은 보나벤투라는 1248년부터 파리대학교에서 신학과 성서를 가르쳤는데, 탁발 수도자가 대학교를 잠식한다는 일반 교수들의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그들은 보나벤투라뿐만 아니라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도 정식 교수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알렉산데르 4세 교황의 개입으로 탁발 수도회에 대한 공격은 중단됐지만, 보나벤투라는 이미 프란치스코회의 총장으로 선출돼 교수직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반대자들에 대항하여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 「마지막 시대의 환난」과 「그리스도의 가난에 관하여」라는 유명한 저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학자로서, 또 프란치스코회 총장으로서 많은 일을 했습니다. 수도회 내부의 여러 유파로부터 수도자들을 보호해야 했던 그는 창설자인 프란치스코의 참 정신과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1260년에는 프란치스코회의 회칙을 개정했고, 프란치스코의 전기를 새로 작성해 「성 프란치스코의 대전기」와 「성 프란치스코의 소전기」를 발표했습니다.

1265년에는 요크의 대주교좌를 거절하고, 1271년에는 그레고리오 10세 교황의 선출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1273년에는 알바노의 교구장 추기경이 되었고, 다음 해에는 교황이 로마와 동방교회의 일치를 토의하려는 리옹 공의회의 의사일정을 짜도록 위촉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공의회가 열리고 있는 동안 보나벤투라는 그곳에서 운명하고 말았습니다.

보나벤투라는 중세 시대 가장 뛰어난 철학자이자 신학자이며 사상가 가운데 한 명입니다. ‘세라핌 박사’로 알려진 보나벤투라는 수많은 글을 써 남겼는데,「베드로 롬바르드의 금언에 대한 주석」, 「하느님께 가는 영혼의 여정」, 「세 갈래 길」, 「완덕 생활」 등의 영성 서적과 약 500편의 설교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보나벤투라는 1482년 식스토 4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고, 1588년 식스토 5세 교황으로부터 교회학자로 선포됐습니다. 성체와 성합, 추기경 모자는 보나벤투라의 상징이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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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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