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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 (8월 14일)

사제, 순교자, 폴란드 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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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막시밀리아노 마리아 콜베 신부(1894~1941)는 1894년 폴란드 즈둔스카볼라에서 태어나 신심 깊은 부모 아래에서 자랐습니다. 1907년 오스트리아의 지배하에 있던 레오폴리의 소신학교에 입학했고, 3년 뒤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입회했습니다.

1914년 종신서원을 한 뒤 1918년 사제품을 받은 성인은 1919년 폴란드로 돌아와 폴란드 크라쿠프의 프란치스코회 신학교에서 교회사를 가르쳤습니다. 그는 폐결핵을 앓는 어려움 속에서도 바르샤바 지역에서 ‘원죄 없으신 성모의 마을’이란 이름의 수도 생활 공동체를 설립했고, 잡지를 발행하며 미디어 사도직도 수행했습니다. 그리고 1930년 일본으로 건너가 나가사키 인근에 수도 마을을 세우고 6년간 선교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성인이 만든 공동체가 전 세계로 퍼지면서 폴란드 교회 안에서도 유명해졌습니다. 그러나 1939년 제2차 세계대전 발발로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했을 때 동료 수도자들과 나치에 체포돼 수용소에 갇혔다 풀려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는 이후 가난한 이들, 박해받는 유다인들을 자신의 공동체에서 보호하고 도왔습니다. 이후 1941년 유다인들을 돕는다는 이유로 나치는 그를 체포해 바르샤바의 형무소에 감금했다가 ‘죽음의 수용소’ 아우슈비츠로 옮겼습니다. 수천 명의 유다인과 난민들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그에게 나치가 부여한 것은 죄수 번호 ‘16670’이었습니다.

1941년 7월 어느 날, 그가 감금돼 있던 14호 막사에서 수용자 한 명이 탈출하는 일이 발생했습니다. 그를 잡아들이는 데 실패하자 독일인 간수는 연대 책임을 물어 같은 막사에 수용된 이들 중 열 명을 뽑아 굶겨 죽이는 아사형에 처했습니다. 성인은 그 10명 중 한 사람인 프란치스코 가요브니체크를 대신해 아사형을 자처합니다. 남을 대신해 죽음을 자처한 것도 모자라 성인은 이곳에서도 갇힌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고 기도해줬습니다. 당시 감방 간수는 수감자들이 묵주기도와 성모 찬가를 바치다 죽어갔다고 증언했습니다. 학살과 죽음의 공포 속에서도 3명의 동료가 성인과 기도하며 3주가 넘도록 생존했습니다.

그는 보름 가까운 시간을 아우슈비츠의 아사 감방에서 혹독한 고통 속에 지내다, 1941년 8월 14일 성모 승천 대축일을 하루 앞두고 석탄산 독주사를 맞고 순교했습니다. 그리고 대축일 당일인 다음날 그의 유해는 아우슈비츠 시신 소각장에서 불태워졌습니다. 이웃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은 이 극적이고 숭고한 그의 순교 이야기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많은 이가 깊이 감동했고, 20세기 가장 유명한 성인 중 한 사람이 됐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성인 덕분에 살아남은 프란치스코 가요브니체크는 고향으로 돌아가 살다가 1995년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는 “아우슈비츠에서 다른 사람을 위해 죽겠다고 나선 이는 콜베 신부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고 회고하며 죽기 전까지 매년 성인의 기일 때마다 아우슈비츠를 찾아와 헌화했습니다.

1971년 바오로 6세 교황은 그를 시복했으며, 1982년 10월 10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그를 성인품에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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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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