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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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4. 연자방아 / 사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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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미 마을에서 연자방아는 지금도 살아있는 역사다. 아버지를 통해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냥 신기했다. 요즈음 말로 연자방아라 하지만, 당시 사람들은 돌방아라 했단다. 돌방아는 1950년 6ㆍ25 전쟁 때 폐쇄되었다고 한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다. 돌방아라 벼는 쌀이 부서지기 때문에 찧을 수가 없고 단단한 보리만 찧는다고 했다. 대신 벼는 나무로 만든 막대기를 양손으로 돌려서 만든 목매를 사용했단다. 한평생 쌀과 보리를 먹고 살았고, 쌀과 보리가 자라고 수확되는 현장을 보고 살았는데 쌀은 약하고 보리는 단단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오호통재라, 쌀보리 양식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구나!

방아 찧을 때 아이들도 큰 역할을 한다. 소의 고삐를 쥐고 방아 주위를 도는 것이다. 어른들은 가래질하며 방아에서 나오는 보리를 밀어 넣고 담는다. 큰 어미 소가 작은 아이 손에 거머쥔 고삐 때문에 꼼짝을 하지 못한다. 아이는 집안 행사에서 큰일을 담당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을 때마다 어깨가 올라가고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어른들은 자식들 입에 들어갈 양식을 마련한다는 기쁨으로 힘겨운 노동도 마냥 즐겁기만 하다. 연자방아가 돌아가는 모습을 그려보니 보릿고개 시절에 한 가족의 끼니 걱정을 덜어주고 그 순간만큼은 배불리 먹을 수 있다는 기쁨에 모두가 행복한 시간이었으리라. 연자방아와 함께 마음이 따뜻해지고 푸근해지는 순간이다.

“당시 디딜방아는 없었어요?” “당연히 있었지. 그 많은 양의 보리를 어떻게 디딜방아로 찧겠냐?” “아하, 그렇구나!” 경험해 보지 못한 것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질문이구나 싶었다. 수많은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가족의 양식을 마련하는 데 큰 역할을 해 준 어미 소한테 고마움을 전해본다. “소야, 고맙다. 네가 아니었으면 연자매를 사람의 손으로 돌렸어야 했는데, 그 아이의 힘으로 그 큰 돌을 1㎜도 옮기지 못했을 텐데 말이다.” 방아 찧는 날은 온 가족과 가축의 합동작전이었구나. 지금 마을에는 한 집에 한 사람, 많아야 두 사람이 살고 있다. 세 사람은 대가족에 속한다. 반세기 만에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다시 실감한다.

연자매가 있던 자리는 마을 입구 정자나무 밑이다. 정자나무는 1959년 사라호 태풍 전까지 어른들의 쉼터, 아이들의 숨바꼭질 놀이터, 양식을 만드는 방앗간이었다고 한다. 그 위치는 소리댁 바깥마당과 반쟁이댁 집 어귀 사이란다. 연자매는 사라호 태풍 이후, 마을 길을 넓히면서 마을 광장 지하에 축대 역할로 묻혀 있다. 안타까운 마음에 “그 소중한 것을 땅 위에 어딘가에 세워두지, 왜 묻으셨어요?” “당시에는 길도 좁은데 세워 둘 땅이 없었어.” 이 말씀을 들으니 요즘 젊은이들에게 “쌀이 없어서 배고파서 죽을 뻔했다”고 하니, “라면 끓여 드시지” 한다는 말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쓴웃음이 나왔다.

연자매는 꼬미 마을 식생활 문화를 알려주는 귀한 역사적 존재다. 연자매가 언젠가는 땅 위로 올라와 옛 선조들의 먹거리 활동들을 낱낱이 기억하게 하고, 식생활 도구의 변화를 알려주며, 후손들에게 가르침을 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희망을 품고 있는 누군가가 있는 한 희망은 사라지지 않듯이, 지나간 역사라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후손들의 머리와 가슴에 새겨질 때 역사는 다시 살아나고, 그 가치가 더욱 빛나는 것이다. 가까운 미래에 마을 역사관이 세워져 정자나무 아래 연자매가 재현되는 그 날을 꿈꾸어 본다. “미래가 있고 너의 희망이 끊기지 않는다.”(잠언 2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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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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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마카 2장 61절
너희는 대대로 명심하여라. 그분께 희망을 두는 이는 아무도 약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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